나는 PD 수첩 PD들이 존경스럽다


어제 논문 최종심사본을 제출하느라 며칠 고생을 했더니 좀 피곤해서 간단하게 적으련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PD 수첩 PD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황우석 교수가 (1) 인격을 겸비한 탁월한 과학자인지 (2) 교묘한 언론플레이에 능하지만 실력은 뛰어난 학자인지 (3) 때로는 기만과 조작을 서슴지 않는 사기꾼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두고 싶다. (2)와 (3) 둘 중 하나겠지만, (3)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서는, PD 수첩 2탄이 불방됐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의혹들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반면 나는 PD 수첩 PD들은 직업적인 능력도 뛰어날뿐더러 윤리적 책임의식도 갖춘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오버한다고?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두 가지 쟁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훨씬 더 중요한, 내가 볼 때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쟁점들이 있지만, 그건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 만큼 여기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는 난자 채취를 둘러싼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논문의 조작 내지 기만 의혹에 대한 논란이다. 적어도 이것이 바로 PD 수첩이 제기하려고 했던 쟁점들이라고 볼 수 있다.


황교수 스스로 과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만큼 첫 번째 쟁점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첫 번째 쟁점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쟁점의 경우 계속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해명이 된 게 없다. YTN의 보도가 나가고 MBC의 사과 성명 발표가 나온 다음 날에도 몇몇 전공자들이 부록으로 수록된 사진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밝혀냈고(오늘자 뉴스를 보니 섀튼 교수도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뉴욕 타임스도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의혹이 외국 주요 언론으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정작 PD 수첩 2탄은 방영되지 못하고 있고 재검증 요구에 대해 황교수 측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러니 의혹은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해명된 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


내가 PD들을 높이 평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두 가지 쟁점들을 용감하게 다루었고, 오랜 시간 동안 이 쟁점들을 취재했으며, 적어도 첫 번째 쟁점은 분명히 해명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도, 비록 2탄이 방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PD 수첩]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PD 수첩]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황우석 교수 팀의 논문의 결함과 허점이 발견될 수 있었을까? 다들 황교수 우상화, 신격화에 여념이 없을 때, 이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언론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광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나 찌라시 언론들의 역겨운 비난들은 제쳐두고, 검토해볼 만한 비판을 몇 개 생각해보자. 생각이 잘 안돌아가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과학자들의 학문적 정직성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방송국 PD들은 닳을 대로 닳았으니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PD들에 대한 편견을 뺀다면,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사람은 행동이나 결과로 판단해야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선입견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과학자든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종교인이든, 그가 무었을 했고 무슨 일을 하는가를 보고 판단하는 게 옳지,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니까, 과학자는 원래 정직하니까, 종교인은 원래 수도자들이니까 믿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미 나는 그 사람 편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소리다. 


그렇다면 자신의 권위와 대중적인 명성에 의존하여 1년 넘도록 난자 채취 의혹을 부인하다가 방송이 나간 뒤에야 비로소 실토를 하는 황교수를 어떻게 무작정 신뢰할 수 있는가? 더욱이 황교수가 논문을 조작했다, 사기를 쳤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의혹들이 있으니 해명해보자고 말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처음에는 황교수 측에서도 재검증에 대한 계약까지 체결하지 않았는가?  


또 누구는 [Science]의 지적 엄격성,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Science]의 검증 체계가 실제로는 상당히 허술하다는 것에 대해 여러 사람이 지적하고 있고, 실제로도 문제의 사진들의 경우는 그것이 잘못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자료들에 대해 실수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어떤 이들은 왜 학자들이 아니라 언론이, PD들이 논문 검증을 하느냐고 따진다. 심지어 인문학도들이 자연과학을 훼손하려고 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PD들이 직접 논문을 검증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주장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황교수 팀은 애초에 논문의 검증을 국과수에 의뢰했고(비공식적으로. 왜 그랬을까? 이것도 의혹 중 하나다), PD 수첩도 똑같이 국과수에 의뢰했다. 왜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더욱이 검증 결과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다. 황교수 측이나 그를 옹호하는 일부 학자들은 MBC 측의 검증 방법이 비과학적이고 잘못 되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은 다소 일방적인 데다가, 그럼 제 3기관에서 재검증해보자는 의견은 왜 거부하느냐는 반문에 부딪친다. 황교수는 왜 그렇게 재검증을 거부하는가? 그게 자존심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의혹은 계속 제기되는데,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게 더 자존심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그는 난자 채취 의혹 때도 거부하고 부인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어떤 사람들은 PD 수첩이 ‘황우석을 죽일 목적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문제에 접근한 게 잘못이라고 말한다. 우선 묻고 싶다. PD 수첩이 자기 스스로 ‘황우석을 죽이기’ 위해 취재를 했다고 시인한 적이 있는가? [PD 수첩]은 못 믿는데, 어떻게 YTN의 보도, 지극히 선정적이고 일방적인(왜냐하면 PD 수첩 팀의 의견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황우석 교수 팀의 말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에) 보도는 그렇게 신뢰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취재 윤리를 문제 삼기도 한다. 목적이 좋다고 해서 과정이 나빠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에는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우선 “나쁜 방법으로 좋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황우석 교수 팀에는 응원과 격려, 자발적인 난자 기증, 연구 지원 강화, 후원회 결성 등, 정말 눈물겨운 애국의 충정이 쏟아진다. 반면 똑같이 “나쁜 방법으로 좋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PD 수첩에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비난, 인격 모독, 중징계, 형사 처벌 위협 등이 휘몰아치고 있다. 왜 이런 천양지차의 대접이 존재할까?


그 다음, PD 수첩이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고 한다. 실제로 PD들도 황교수의 구속 가능성을 언급했고 몰래 녹취했다고 시인하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비리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최초의 제보가 황교수 쪽에서 나왔고 취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이 계속 발견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PD 수첩 쪽에서 의혹을 갖고 취재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또한 그런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할 경우 취재 대상이 불쾌감과 당혹감, 때로는 위협감을 느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PD 수첩의 강압적 취재 방식(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런데 나는 정확히 어떤 강압이 실제로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이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심리적 느낌과 실제 강압이나 위협, 협박을 혼동하지 말자는 뜻이다. 이것들은 언론플레이에 능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과장하고 조작하고 덮어씌울 수 있는 소재들이다.


따라서 PD들이 실제로 위반한 취재 윤리가 무엇인지 좀더 정확히 해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MBC 자신을 비롯한 모든 언론이 YTN과 황교수 팀의 증언에만 의존해서 PD들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정작 담당 PD들의 견해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간접적으로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담당 PD들은 황교수의 구속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기타 YTN이나 황교수 팀, 저질 언론들이 문제 삼는 다른 점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고 한다. 따라서 비난하고 몰아붙이기 전에 먼저 그들 자신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 필요하다면 양편의 의견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너무 길어졌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나는 황교수가 (2)인지 (3)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익을 위해 가리지 말고 그냥 덮어주자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정 그러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하지만 PD들을 그렇게 몰아붙여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그렇게 그들을 몰아붙이는가? 왜 그렇게 그들의 인격을 모독하고 매국노 취급하고 과학의 파괴자로 낙인찍고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고까지 외치는가? 이건 그들이 위반했다고 하는 취재 윤리의 위반이나 그들이 범했다고 말하는 인권 침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권 모독이 아닌가?


나는 PD들이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들의 취재 윤리 위반 사실을 시인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전후 사정이 좀더 자세히 밝혀져야겠지만 나는 PD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강압 취재를 했거나 취재 대상 인물들의 인격을 침해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게 내 심증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들이 정말 심각하게 그런 것을 위반하는 사람들이라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웬만한 솔직함과 자신감이 없이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런 큰 사건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내가 PD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MBC의 행태는 참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대중들의 비난도 비난이거니와 이사진의 강한 압박(여기에 청와대나 국정원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이 있었겠지만, YTN의 보도가 있자마자 허겁지겁 죽을 죄를 지었노라고 사죄하는 건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PD들의 의견을 정말 청취해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MBC는 당해도 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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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6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12-0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입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짓거리죠.

2005-12-07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12-0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시안에 퍼갔는데 광란의 네티즌들이 진태원님 욕하느라 난리더군요. 허락없이 퍼가서 죄송합니다.

chika 2005-12-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왜 이런 글을 읽고 욕하지요?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 정말 많아요. ㅡ,.ㅡ
- 논문 최종심사본 제출하셨다고요? 고생많으셨겠습니다. 그래도 성탄전에 내셨으니 ^^;;;;

로드무비 2005-12-0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2005-12-0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현 2005-12-0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면 '과학'교와 '국익'교가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PD수첩 제작이 잠정 중단되었고, 아마 프로그램폐지로 이어질 거라고 아까 뉴스에서 그러던데. PD수첩 지키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싶네요. 논문 제출하신거 축하드립니다...^^

balmas 2005-12-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 님/ 그러세요. 별 말씀을. :-)
자꾸 때리다님/ 뭐, 굳이 퍼나르실 것 까지야 ... 욕먹을 각오하고 쓴 건데
욕 좀 먹는 건 상관 없지만, 여기저기 보일 만큼 다듬어진 생각이 아니라서
좀 쑥스럽군요.
치카님/ ㅎㅎㅎ 성탄전에 냈으니 그래도 다행이죠? 어쨌든 상당히 홀가분합니다.
로드무비님/ ㅋㅋ 역시 님에게 딱 걸렸네요. 고칠게요. 감사 ^^
한현님/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딱 맞죠. PD 수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정말.
부끄러운 수준의 논문인데, 축하 받으니 더 부끄럽네요.
워낙 허술한 데가 많다보니 인쇄하기 전까지 고치고 다듬어야 할 생각을 하면 아득합니다. @..@

balmas 2005-12-1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역시 님은 곁눈질의 대가! ^^;
ㅎㅎㅎ 공짜는 없다죠??

하늘바람 2005-12-1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노성일 박사의 말을 듣고 예감하고 있던 일이라지만 경악했답니다

balmas 2005-12-1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ㅎㅎ 큰 걸루다가 한번 생각해봐야지 ...
하늘바람님/ 뻔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사실인데도 막상 밝혀지니까 정말
경악스럽고 참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