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囚人)들의 비누
그런데 특히 여인들의 경우 팥이나 녹두가루가 몸의 때를 밀어 깨끗해 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날팥이나 녹두에서 풍겨나는 날비린내는 몸을 씻고 물기를 닦고 나서도 좀체로 가시질 않았었다. 흔히 그 무렵의 여인들을 보면 이러한 팥이나 녹두비린내를 가실양으로 향내나는 꽃을 모아 이것들을 기름에 재웠다가 몸을 닦고나서 조금씩 몸에 바르므로 해서 겨우 그 날비린내를 가셔내는 형편이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오늘날 여인들이 상용하는 향수에걸맞는 쓰임새였다고나 할까.
그후 '사분'(불어 SAVON의 擬音)이라고 불리던 비누가 그 첫선을 보이고 나서도 대중화되기에는 많은 시일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기에는 비누만 하더라도 무척 귀한 물건으로 다루어졌었다. 그래서 그 무렵 화장비누를 사서 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형세(形勢)있는 사람들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본래 화장비누에는 향이 함유되어 있어서 이런 화장비누 냄새를 그무렵 사람들은 곧잘 '멋장이 냄새'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했었다.
그 무렵 멋쟁이노라고 행세라도 할 양이면 그 몸에서 화장비누 냄새쯤 풍겨야 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앞서의 이야기는 모두 밖의 세상에서 그런대로 생겨난 일들이지만 또한 그 지음 감옥(교도소)안의 수인들의 사정은 어떠하였는지....
진작에 내가 들어 알고 있었던 일인지라 잠시 옮겨본다. 그 무렵 수인들에게는 목욕비누라는 명목으로 지금의 빨래비누 보다는 훨씬 못하고 탈모비누(부산피난시절 군에서 말썽을 빚던 비누)보다는 조금 나을 성싶은'미쓰와'(三輪)라고 불리던 저질의 왜(倭) 비누가 감방마다 배당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인들간에는 이 비누 한토막을 제몸을 지켜주는 부적처럼 소중히 다룬다고도 한다.
그래도 명색이 목욕비누인지라 약간의 향료는 첨가 하였겠는데 그 냄새가 잘은 몰라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는 것이 그 무렵 이 방면 경험자의 말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 무렵 수인들간에 불문율로 지켜지던 일인데 가족으로부터 수인에게 면회신청이 들어오면 그 수인에게는 이 비누 토막을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미처 세수할 만한 여유가 없다보면 그 수인은 그 비누토막으로 얼굴, 손 할 것없이 마른 비누질로 맨살에다 마구 문질러 댄다고 한다. 그래서 수인특유의 감방냄새를 조금만이라도 제거하려고 안간힘들을 쓴다고 들었다.
이러한 예로 미루어 보더라도 인간은 극한 상황하에 놓이면 곧잘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처럼 받아들이는 그런 도착(倒錯)된 행동을 스스러움없이 해대나 보다. 어쨌거나 이러한 비누가 이 땅의 고로(古老)들에게 그냥 그대로 수월히 받아 들여지진 않았었다. 그래서 비누를 사용해서 짐짓 그 냄새가 집안에 풍겨 나돌 양이면 '쯧쯧 고얀놈의 냄새 또 맡게 되나보다'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몸을 멀리 하든가 보다 심한 경우 고개를 외로 틀고 '우엑 우엑'하면서 향내가 그리도 역한지 헛구역질까지 해대는 바람에 가뜩이 어려워서 쉬쉬하던 젊은이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