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化粧)비누 냄새를 풍기며

이땅에서 개화(開化)다운 개화의 물결이 드세게 작용한 연대라면 아무래도 1920년대를 손꼽아야 될성 싶다.

이 무렵에는 남녀간의 벽도 타파되고 사회는 이미 남성만의 독단장(獨斷場)이 아닌 여성들의 사회에의 관심과 자각이 뚜렷해져서 이에서 오는 참여도 제법 활발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새로운 사조가 물밀듯 밀어닥치면서 재래 전통과의 사이에는 번번히 충돌을 일으키고 저항과 대립으로 맞서서 적지않은 진통을 겪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사회는 날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해서 전이(轉移).변천(變遷)하여 그때마다 새 풍조를 낳고 사회의 실상도 그 모습을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외국선박에 실려서 청상(淸商)의 손을 빌려서 들여오던 박래품(舶來品)이라 불리던 양품(洋品)이며 일인(日人)의 손으로 들여오는 왜상품(倭商品)은 하나같이 별스럽고 신기해서 그 값도 비싸 귀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북새통을 비집고 약삭빠르게 대어선 상품 중에는 여인들의 화장품이 제법 이른 축에 끼어든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우리네 여인들의 손길에서 다루어지던 화장품의 대강을 살피면서 넘어가기로 하자.

본래 이 땅에 재래(在來)한 화장품을 찾자면 우선 그 원료부터 천연(天然)에서 얻어지는, 그것도 일상의 생활 주변에서 쉽사리 얻어 질 수 있는 것들이다. 먼저 분가루(白粉)로는 분꽃의 열매를 곱게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서 쓰여졌다고 한다. 또한 머리칼에는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들을 써서 매만져졌더랬다. 그리고 이러한 머리를 매만지던 솜씨도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 머리털을 빗는데도 참빗으로 한오리의 머리칼도 흐트러짐이 없이 곱게 다스려서 잠재워 빗는 것을 그 으뜸의 맵시로 쳤다고 한다. 지금처럼 자연미를 살린다고 해서 부수수하게 부풀려 빗거나 하면 그 무렵 어른들이라면 쓸개빠진 년이나 할 짓이지 하면서 내몰아쳤을 것으로 짐작해서 틀리지 않으리라.

내가 본 바로도 비누가 나돌기 전에는 사람들은 몸의 때밀이로 팥이나 녹두를 맷돌에 대충 갈아서 가루를 내어 씻었다. 그래서 몸을 씻는데 그 가루를 한웅큼 손안에 쥐어들고 떠다논 세수물에 비벼대면 거품이 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처럼 비누가 나돌기 전까지는 이러한 곡물(穀物)의 분말(粉末)로 때를 미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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