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의 지배자 두룬 1 - 연금술사의 탄생 ㅣ 초록도마뱀
김정란 지음, 김재훈 그림 / 웅진주니어 / 2014년 7월
평점 :
불의 지배자 두룬...
한국형 판타지라고 할까?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판타지문학에 대한 환상이나 커다란 기대감 같은 것은 없는 편이다. 대작이라 불리는 판타지 문학들이 서양의 신화나 종교적 기원에 바탕을 하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문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거나, 신기한 장면들을 더욱 신기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두룬'은 그러한 서양의 신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신화를 끌어온다. 게다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두리 두룬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를 형상화하였다.
이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비형랑 설화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김정란 작가가 '두두리 도깨비 두룬'이라는 책에서 전했던 내용과 동일하다. 도깨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책 '두룬'은 바로 그 두두리 도깨비 두룬을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이다.
신녀를 사랑한 마룬왕이 죽어서 영혼이 되어 찾아와 낳은 아들 두룬. 두룬은 인간이지만, 신녀의 몸과 왕의 영혼이 만나 태어난 반인반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룬의 어머니 신녀는 유화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신녀이다. 두룬이 태어나던 시점은, 불교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이다. 새로운 종교의 시대가 오는 것을 질투하고 적대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 유화어머니를 통해 우리나라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고 그 종교가 자리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서라, 그리하지 마라. 신원시가 파괴된 것은 비통한 일이지만, 사찰을 지은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로국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로 불교를 선택했으니까. 네 아버지의 영혼이 지상에 머무시는 동안, 나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언제나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앞세워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너는 불교 자체와 싸울 필요는 없다. 그것을 방패 삼아 사욕을 채우고 억압을 행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 (p.199)
두룬이 태어나자 두룬의 힘을 두려워하던 이들에 의해 신녀가 살던 신원시가 파괴되고 유화어머니를 믿는 종교는 사라진다. 그동안 두룬은 어머니의 말을 따라 다다라 마을에서 최고의 두두리가 되어서 다시 돌아온다.
신화를 모티브로 하는 판타지들은 신화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인간이 신의 힘을 갖기까지의 고행과 노력이 있고,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세상에서 영웅의 행로를 걷는다. 두룬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다라 마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룬은 더 공부할 것이 많지만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유언을 듣는다.
"장하다, 내 아들. 어미의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하지 마라. 복수는 어미에게는 오히려 모욕이다. 미움이 미움을 이기는 법은 없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낳을 뿐이다. 또 한 가지, 네가 지니게 된 능력을 결코 너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날, 너는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어미는 네 능력을 통제하고, 너 자신의 능력과 맞써 싸우는 방법을 배우게 하려고 너를 다다라 마을로 보냈다. 하늘로부터 받은 신비한 능력을 이기적인 이유로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세상에 파멸을 가져 오게 된다." (p.199)
두룬은 다다라마을에서 연금술을 배웠다. 서양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연금술. 그런 것이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서양의 것으로만 알았던 연금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깨비 방망이의 모습과 기능으로 나타난다. 두룬이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 겪은 과정은 하나의 인간이 신의 힘을 가진 영웅으로 태어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다. 그곳에서 만난 길달과의 우정은 결국 자신의 욕망과 오만에 빠진 길달의 배신으로 끝이 난다.
앞으로 두룬이 어떤 길을 걸어가며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불을 지배하는 자 두룬. 그의 성장과 새로운 역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