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하는 엄마다 - 3050 직장맘 9명의 스펙터클 육아 보고서
권혁란 외 지음 / 르네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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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제목이 주는 느낌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나는 일하는 엄마다"

 

나도 일하는 엄마다. 책을 읽다보니 마치 내 이야기같은 내용도 나오고, 나는 겪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도 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또래 아이를 둔 저자들의 글이 성인이 된 자녀 이야기보다 훨씬 공감이 간다.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다'의 김영란의 이야기는 특히 나의 공감을 많이 받은 이야기이다. 뭐든지 계획대로 척척 될 줄 알았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나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있었으니 바로 "육아"였다.

 

[아기가 생겼다고 남편이 퇴사 여부를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출산으로 일을 그만둘지 말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당연히 일은 계속 하는 것이었다.] p.12

 

'나는 힘들어서 못봐준다'고 선언한 친정엄마가 와서 아이를 봐주게 되고 그녀는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이럴 때 왜!!! 친정엄마만 이런 역할을 맡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들쳐업고 거래처에 가기도 하고,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결국은 친정엄마도 손을 들어버린 상황이 되자 의지할 곳은 어린이집밖에 없게 된다. 이렇고 저런 어린이집을 고를 준비를 만만히 하고 나섰지만 결국 그녀가 어린이집에서 한 말은 "자리 있어요?"였다.

 

[나는 회사를 그만 두지 않아서 '독한 여자'가 됐는데, 퇴근하고 애 데리러 가거나 꼴랑 전화 받아주는 정도로 남편은 '좋은 아빠'가 됐다] p.19

 

구구절절 내 맘이랑 똑같은 말이다. 이쯤에서 내 얘기 좀 보태자면, 나 역시 출산 후 휴직은 생각도 않았다. 휴직 자체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 내가 나가는 순간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줄을 서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갔는데, 애 하나 낳았다고 덜컥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 역시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게다가 함께 사는 시부모님도 일을 하는 분이고, 애는 엄마가 봐야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시는 시어머님 덕분에(?) 일을 그만두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시어른이 안봐주는 아이를 친정부모한테 맡길수도 없고, 친정부모가 시어른이 있는 집에 와서 애를 봐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어른집에서 독립할 수 있는 경제적여유도 없었다. 내게 출산으로 인한 육아는 휴직도 아닌 '퇴직'이었다. 

 

그리고 6년 가까이 육아를 하다가 이제 겨우 다시 일을 하러 나왔다. 물론 내가 그 전에 쌓았던 커리어는 지금 현재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나는 생판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러 나가야하냐고?

 

사람들은 '여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아이를 떼놓고 일을 하는데는 '경제적인 이유'만큼이나 '자기발전과 계발을 위한 욕구'도 크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나'로 살아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만 살아야하는걸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하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아이를 잘 키우고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말안해도 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치자. 그 보상심리로 인해 나는 아이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까? 그렇게 키운 내 딸이(난 딸만 하나다) 나처럼 자신의 아이가 클 때까지 또 자신을 포기하며 사는 삶을 살거라는 생각을 하니 캄캄하다.

 

그런 면에서 '큰 사과 하나? 작은 사과 둘!'이란 글을 쓴 신혜원님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육아와 자신의 일을 병행하는 엄마에게 '슈퍼우먼'이기를 원하는 사회분위기가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육아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일하러 나왔다면 일도 남들보다 잘해야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큰 것 하나를 가져서 갖는 행복도 좋지만, 작은 것 두개를 가져서 얻는 행복도 괜찮을 것같다. 사회가 그것을 용납해주는 분위기가 된다면 더 좋을것.

 

육아는 우리 사회에서 엄마가 포기하면 안되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나쁜 엄마란 없다'는 글을 쓴 유숙열님처럼 엄마가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산다면 그걸 보는 아이 역시 그러한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긴 나쁜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롤모델로 자리잡을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죄책감에 너무나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일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놓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 직장맘의 현재 혹은 과거의 직업이 그래도 전문적이거나 고급인력에 해당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회사대표거나 신문사기자거나 교수거나 하는 사람들과, 생산직 근로자거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일 때 그들을 바라보는 눈은 분명 달라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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