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김별아의 소설을 읽었다. [미실]을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꽤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만은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왕실동성애 스캔들을 소재로 삼았다는 소개글에 흥미가 느껴졌다. 

 

작가들은 역사의 일부분 (아주 적은 한줄, 혹은 하나의 단어에서도)에서도 소재를 찾아낸다. 그것에 살을 붙이고 생명을 주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폈다.

 

최근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퓨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극이 열풍이다. 남성 위주의 무겁고 강한 이미지의 사극에서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약간은 말랑말랑한 사극이어서 나 역시 관심을 갖고 보는 편이다. 그런데 보통 여성이 전면에 나선 사극들은 궁궐 내 암투나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을 낳느냐 못낳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왕의 관심을 받지 못한 후궁들의 술수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이야기꺼리가 숨어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성애라니...내가 혹시 그 책을 읽어보았다할지라도 그냥 무심코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왕실에서 말이다. 지금도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 옛날 조선시대는 더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소재가 동성애, 그것도 왕실의 동성애라고 해서 내용이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왕 또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손을 보는 것, 거기에 대를 이을 왕자가 있어야한다는 책임이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좋은 음식은 물론이요, 수많은 부인(?)들을 두어야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왕 또한 그 책임(그것이 스스로의 즐거움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는 막중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마련이다)이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의 왕들에 대해서도 안쓰러운 마음을 가진 적 있다. (궁궐 속 여인들의 삶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봉빈은 세자의 첫번째 부인이 쫓겨난 후 두번째 부인이 되었다. 궁궐 속 삶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래도 세자와 부부의 정으로 살아가면 그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봉빈은 혼례 첫날부터 세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고 그저 부부의 정으로 살아가리라 했지만 그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기댈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차라리 권력을 갖고자 했더라면 봉빈이 그토록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야 할 일과 목적이 없으니 봉빈은 그대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봉빈에게 눈에 띈 아이가 있었으니..

 

조선의 순종적인 현모양처상을 뒤집는 파격적인 인물(작가의 말 중에서)이라기보다 사랑받기를 원했던 그녀의 마지막 살고자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이야기 속에는 봉빈 말고도 나인들과 내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삶이 봉빈과 무에 그리 다를까? 세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세자빈에게는 궁궐 속에서 더이상 붙잡을 것도 기댈 곳도 없었던 것이다.

 

봉빈의 삶이 불쌍하고 애틋했지만, 그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묘사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봉빈은 무기력했다. 그랬기때문에 권력다툼 이라는 큰 싸움이 아니라 나인과의 비밀스러운 사랑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 봉빈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고 강한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렇게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진 않았을텐데.

 

봉빈을 이해하긴 하지만 답답하게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조선시대의 여성상을 뒤집는 파격적인 여성으로 기억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못하고 다만 그걸 기억할 뿐이지만, 그녀의 사랑을 기억하기에는 이야기의 힘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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