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중에서 베스트를 뽑으려고 하니, 나는 과연 무엇을 '성장소설'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요즘은 워낙 무슨무슨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이 많다보니 그렇기도 하겠고, '성장소설'이든 뭐든 무슨무슨 ~소설이라고 이름이 붙여지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한정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는 ~~소설이라고 이름붙여진 소설을 떠올리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굳이 뽑는다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들 중에서 내면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몇몇 소설을 소개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싶다. 

첫번째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노트'이다.  

   
이 책의 표지그림이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권위적인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는 어른 앞에서 잔뜩 움츠린채 힘없이 서 있는 아이. 저 어른의 모습에 지금의 내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자크와 다니엘이 서로 교환하며 쓰던 회색노트가 발각되고 그 내용이 문제가 되면서 시작되는데 이 회색노트에는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싹트는 과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른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기에 노트의 내용을 변명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가출'을 감행하면서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 책은 자크와 다니엘이 한단계 더 성숙해지는 과정에서의 사건뿐만 아니라 종교와 교육,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청소년소설이라 한정짓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든다.


두번째는, 케이트 더글라스 위긴의 '서니브룩농장의 레베카'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레베카'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을 읽을 수 있었다. 두 이모가 그랬고, 코브 부부가 그랬고, 에마 제인이라는 친구가 그랬고, 알라딘 아저씨도 그랬고, 결정적으로 레베카 자신이 그랬다.

레베카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인물이다. 물론 레베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달라진 환경에서 적응을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레베카 라는 아이가 가진 선천적인 성격에서도 기인한다. 

재잘대기 좋아하고, 상상을 즐기는 아이. 현대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은 바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레베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분명 과거지만, 그녀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현대가 원하는 인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베카의 긍정적인 사고는 레베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삶과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그녀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보여도 우리는 거기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은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 

워낙 유명한 책이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싶지만, 그래도 역시라고 해야할까? 앞의 두 책에 비해 조금 가볍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과 훨씬 가까워보인다.

책은 미르와 소희, 바우가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진득한 우정을 형성하는 소설이면서, 농촌의 현실과 대응법을 보여준 소설이기도 하고, 부모의 이혼이나 죽음으로 인한 한부모자녀의 성장기이며, 그러한 부모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안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잘 어울려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책속 삽화는 정말이지 책의 분위기를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 따스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이금이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 또래 아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어서 이금이스타일이라고해야할까? 그런 것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이번에 이 책의 후속작 '소희의 방'이 출간된다해서 다시 이 책을 훑어보았다.  

열 다섯살이 된 소희의 이야기라니 나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삶을 그릴까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했던 책들의 주인공들'자크와 다니엘, 그리고 레베카'의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었다. '소희의 방'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상상했던 소희의 삶과 작가가 다시 끌어낸 소희의 삶이 어떻게 다를지 그 궁금함을 이제 풀 수 있겠지. 사실 인터넷에 연재되고 있는 이야기를 볼수도 있었지만, 드라마도 매회 기다려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책으로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곧 출간된다하니 곧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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