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3일의 겨울 ㅣ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평점 :
우리는 가끔 우리와 다른 세대(그것이 위든 아래든)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 세대차이란 것도 어느 정도 두터운 층이 있었기에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요즘은 그런 것마저도 없어 ‘단절’을 경험하기 십상이다. ‘153일의 겨울’은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로 생각꺼리가 많은 소설이다.
갈샨은 몽골의 이콰투루우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소녀다. 몽골하면 징기스칸과 대제국이 떠오르지만, 지금의 몽골은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뒤늦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여러 부작용도 함께 겪고 있는 중이다. 몽골에서도 갈샨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서양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사진낚시’를 하는 아이보라와 같은 아이도 있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는 갈샨과 같은 아이도 있다. 갈샨의 아빠인 리함은 48톤짜리 트럭인 ‘우랄’을 운전한다. 이콰투루우 아이들에게는 리함의 ‘우랄’은 굉장한 볼거리이자 놀거리이다. 그런가하면 갈샨의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은 도시인 이콰투루우와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곳이다. 대외적인 몽골의 변화는 몽골 사람들의 삶도 여러모로 바꿔놓았다.
비단 몽골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서양의 문물과 제도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상대적으로 도시가 그러한 변화를 일찍 겪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은 무시되기 마련이고, 전통적인 삶은 낡고 고루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은 도시에서 살던 갈샨이 엄마의 임신으로 인해 시골에서 153일간의 겨울을 시골에서 할아버지인 바이타르와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일들이다. 바이타르와 리함, 그리고 갈샨은 각기 다른 세대를 대표한다. 바이타르는 전통적인 삶을 살아왔고, 남들이 뭐라 하든 여전히 그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리함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윗세대와의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가하면 갈샨은 바이타르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친 늙은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동생을 무사히 낳을 수 있도록 요양을 해야 해서 갈샨은 바이타르와 153일간의 겨울을 보내게 된다. 바이타르는 갈샨이 태어났을 때 가족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첫 손주가 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갈샨과 바이타르가 처음 만났을 때 “너로구나, 네가 갈샨이로구나. 내 손녀딸...”(p.31)이라고 말하는 바이타르의 말에서는 애정이 느껴졌다.
바이타르와 갈샨은, 마치 기름과 물 같은 존재처럼 살아왔지만, 이 겨울을 함께 보내면서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은 바이타르가 갈샨에게 ‘검독수리’를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바이타르가 갈샨에게 남자에게만 가르친다는 ‘검독수리’를 가르쳤다는 것은 갈샨을 자신의 가족의 미래를 짊어질 손주로 인정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야생의 ‘검독수리’가 갈샨과 하나가 되는 과정은 인간이 야생의 생물을 길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그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매사냥’과도 같은데 그 과정도 거의 동일하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방법이다. 바이타르는 ‘검독수리’뿐만 아니라 하늘의 바람과 땅의 마멋과 생쥐들, 그리고 눈송이 하나까지도 허투루 보지 않고 날씨를 예측한다. 슈퍼컴퓨터도 날씨를 제대로 예측해내지 못해 엉터리 기상예보를 하기 일쑤인 최근의 일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바이타르와 갈샨이 북쪽의 무서운 바람인 쭈트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바이타르와 갈샨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쭈트는 자연현상인 혹독한 추위만을 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몸으로 체득하고 느껴야 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글이나 배우고 숫자나 배워야한다는 교육 제도와, 말이나 양을 키우고 그들을 보살피며 하나가 되어 가는 삶을 하찮게 보는 도시의 문명과 기계적 삶과 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 번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