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법칙 메타포 9
낸시 월린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열일곱살 매슈가, 아홉살 동생 에미에게 쓰는 편지글의 형식을 띄고 있는 소설이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 혹은 그런 아이들의 주변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매슈는, '이 세상에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내둘려지는 폭력, 그리고, 그저 남의 일-혹은 남의 집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엄마 몰래 쿠키 하나를 먹었다고 목에 식칼을 들이대는 엄마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광란의 질주를 하나는 엄마, 바닷가 바위 위에서 아이를 거꾸로 든 채 위험한 놀이(?)를 하는 엄마, 화장실을 사용못하게 하거나, 집안에 가둬놓는 엄마,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는 엄마만의 재미를 위한 많은 행동들을 참고 견디는 것만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회복지사에게 털어놓을 수도, 주위 사람들(아빠나, 이모를 포함하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아니 그러지 못한 것은 그 결과를 뻔히 짐작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결과 더 나빠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많은 부분이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부모들에게서 일어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사랑하고 보호해 줘야 할 부모들이 '다 너를 위해서, 다 너를 사랑하기때문에'라는 말로 아이들을 향한 폭력의 칼을 휘두른다. 나는 이 폭력의 칼이 비단 니키(매슈의 엄마)의 행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제도(또는 교육제도)에 의해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니키의 폭력과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또다른 사회적 폭력을 아이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은 주위에 없다고 믿어버린 아이들이 살나남기 위해서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엄마의 기분을 맞추고, 수많은 변명거리를 만들어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매슈가 에미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모든 인간의 본능과 책임은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데에 다들 동의하는 것 같더라고. 사람은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어. 사람은 생존할 권리가 있지. 하지만 어째서 다른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처럼 보일까? 그것이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아고 말해 주는 법칙은 왜 없는 걸까?"(p.112)라고.

매슈와 캘리는 엄마의 폭력에 대처하고 피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아직 아기인 에미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에미를 보호하는데도 힘을 쓴다. 매슈와 캘리가 어른들로부터 실낱같은 희망을 본 것은 머독 아저씨의 행동을 통해서였다. 우연히 가게에서 보게 된 머독 아저씨는 자신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원한 것은 상황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 작은 관심을 보여주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부탁했을 때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는 어른'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머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내게는,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만 하느라 세월을 보내지 않고, 행동할 거'라는 매슈의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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