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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엔젤 엔젤 ㅣ 메타포 5
나시키 가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메타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역시, 메타포의 소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쩜 이리도 나오는 소설마다 나를 흔들어놓는지.
엔젤 엔젤 엔젤, 이라는 제목과 검은 바탕 위의 엔젤피쉬는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는 표지지만, 작품 전체의 느낌이 그대로 베어있는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짱과 사와짱, 손녀와 할머니이다. 그런데,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고짱과 사와짱의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서체가 달리 되어있는데도.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하리만치 닮아있다.
고짱은, 카페인 중독이라 할만큼 커피를 즐긴다. 하루에도 30잔씩이나 마신다는 고짱. 마음이 불안하고 집중이 잘 안되는 것이 커피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변화를 위해 열대어를 기르고 싶어한다. 카페인으로 인한 금단현상만이 고짱의 불안한 마음의 원인은 아닌듯하다. 인테리어잡지에서 본 열대어 수조를 보고, 열대어를 기르면 자신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주위의 기대, 시선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로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본 마음과는 달리 행동하는 일이 많다. 때로는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방어막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되려 공격하는 날카로운 뭔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특히 현대사회는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드러내어 놓고 살기에는 불편한 시대이다. 그래서 익명의 세계(인터넷이라는 공간)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특별히, 고짱에게 주어진 불안의 원인은 잘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불안은 더욱 무서운 것이다. 고짱이 열대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즈음, 고짱의 집에는 할메(혹은 사와짱)이 온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함께 살게 된 할메와 손녀, 사와짱과 고짱의 이야기이다.
할메라는 표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나도 어렸을 때는 할머니를 할메라고 불렀다. 어느순간부터인가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할메와 나 사이는 멀어졌다. 심리적 거리감? 고짱은 여전히 할메를 할메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녀, 고짱이 할메, 사와짱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좁다는 얘기일테고 또한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떤 교감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짱의 열대어 기르기는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인테리어잡지에서 본 멋진 수조도 아니고, 더군다나 수조를 받쳐놓은 탁자는 또 어떤가, 마땅히 사용할 가치를 못 느끼던 작고 낡은 탁자가 수조의 받침대로 정해진 것이다. 낡은 탁자 위의 작은 수조 안에 엔젤피쉬와 네온테트라.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그렇다. 엔젤피쉬나 네온테트라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헤엄치고 있는 우리 자신들도 알고 보면 엉성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엔젤이 네온테트라를 공격하여 자기 영역을 차지하고, 또 엔젤끼리도 공격하는 모습 역시 우리의 삶과 무서우리만치 닮았다.
고짱의 세계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세계이다. 그것은 열대어 수조와 낡은 탁자의 세계이다. 어울리지 않는 세계, 그리고 조금만 실수하면(고짱이 열조절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처럼)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세계이다. 사와짱의 세계는 열대어가 있는 수조 속의 세계이다. 보기에는 예쁘기만 한 엔젤피쉬와 네온테트라가 함께 살고 있는 세계. 결국은 고짱과 사와짱의 세계는 모두다 불안한 세계이다.
두 사람이 밤마다 교감을 나누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세계가 이토록 닿아있으니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 그 짐을 내려놓는 날, 고짱은 자신의 알수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사와짱은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엔젤, 천사. 누가 천사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을까? 사랑받고, 칭찬받고,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바램이다. 그러나, 그 천사의 날개도 잘 다듬어지지 않으면 거친 독수리의 날개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라도 천사가 아니라 독수리가 될 수 있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좌절하고 괴로움을 맛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자신에게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