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바튀의 철학 그림책을 4권째 본다. 이번에는, 꼬마아이가 아니라 늑대다. 그런데 이 늑대는 전혀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빨간꼬마늑대는 할머니에게 드릴 오이피클과 고기요리를 들고 길을 나선다. 어디선가 본듯한 광경, 아, <빨간모자>이야기같은걸.

 

그런데, 빨간꼬마늑대는 늑대가 무섭지 않다고 말을 한다. 늑대가 늑대를? 그림 속 빨간꼬마늑대는 심부름을 가다말고 나비를 쫓으며 논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다. 게다가 늑대이야기를 하니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고까지 말한다. 이쯤 되면, 빨간꼬마늑대가 늑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을 따로 읽어도 재미가 있다. 까만꼬마늑대가 <늑대주둥이>처럼 생긴 꽃을 선물하고, 둘이서 <늑대놀이>를 하며 논다. 그렇다. 빨간꼬마늑대도 까만꼬마늑대도 늑대가 아니다. 두 꼬마가 늑대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왜냐면 그들이 무서워할 존재인 늑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기 쉬운(인터넷상에서) 때에 나를 감춘 다른 존재가 된 꼬마늑대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적어도 이 꼬마늑대들은 진짜로 양을 잡아먹거나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늑대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은 나약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을 수 있었다. 익명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다른 이들이 나를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기 안에 감춰져있던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억눌렸던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익명의 세계는 어쩌면, 현대인들의 마음에 하나의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과해지면, 우리가 신문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이버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속의 꼬마늑대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늑대가 되었고, 또, 그걸 놀이로 승화시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번쯤 느껴보는 이런 일탈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단, 오늘은 할머니가 드실 음식이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빨간모자>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겠고,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픈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듯하다. 또한, 아이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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