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옛 사람들의 노래라 하면 민요나 구전동요를 떠올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렀고, 오랜 세월동안 불려 졌기에 그 내용과 음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따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조를 비롯한 고전시가들은 어떨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시조도 노래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시조가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노래로 들을 일도, 노래로 부를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라고는 하지만 부르는 이가 없고 읽는 이만 있으니 그 어찌 노래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을 시조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회에 대한 조감도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는 민요나 구전동요들이 오랜 세월 불리면서 내용이 가감된 것에 비해 가사집이나 문헌에 남아있는 시조들은 변형을 거치지 않았으니 그 시대 사회를 유추해보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이는 현대의 노래들도 다르지 않아서(가사가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도전1000곡 같은 프로그램처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불러야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되니) 후세에 지금의 사회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은 문학의 이해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문학은 언제나 작품만을 떼어내서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어진 배경과 지은이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읽어야만 제대로 이할 수 있다”(p.7)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문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학은 문학 외적인 것(배경이나 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학 그 자체로서 감동을 주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즉,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터이니 저자에게 딴지를 걸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저자의 기본 생각이 이러다보니 시조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소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 미상의 작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제별로 장이 나누어져 있는데,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각 장의 앞부분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느끼는 바를 서술하고 있는데 주로 사회적 현상이나 세태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는 그 주제의 시조들을 몇 수씩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시조의 많은 부분이 익히 들어봤던 시조들이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가 그 시조를 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교과서에서였다. 그 외의 시조들 중에서는 사설시조들이 그나마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일까? 나는 오히려 처음 들어보는 사설시조에 흥미가 느껴졌다. 익히 아는 시조들은,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설명들이 흥미를 반감시켰지만, 사설시조들은 읽는 재미, 생각하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작자미상인 작품이 많으니 구구절절 작가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시조 자체로서 흥미를 느낄 만하다.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손을 놓지 못한 채 재기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대부들의 시조보다 훨씬 인간적이어서 좋았다.

사실 현대정치를 돌아봐도 그와 비슷하여, 정계에서 은퇴했다 다시 돌아오는 인사들이 많다. 그들의 은퇴선언은 눈속임같이 느껴진다. 한번 정계에 발을 들이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미련을 갖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나는 그들이 정치적 신념이 너무 확고해서라기보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은퇴하고 뭔가가 잊혀질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행태를 곱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또 언젠가는 손 놓고 도망갈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대부들이 일시적인 은둔상태에서 노래한 시조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들의 처지와 사회적 배경을 모른 채 시조를 접했다면, 그 시조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의 배경을 알고 시조를 접하면서 내 불신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시조란 것이 주로 조선의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 많다보니 그들의 생활상을 돌아보는 데는 유용할 듯하다. 그러나, 시조를 통해 서민들의 생활을 엿보기는 쉽지 않다. 사설시조에서 조금씩 드러나기는 하지만, 시조란 것이 누구를 위한 노래였는가를 생각하면 궁핍하고 살기 힘든 서민을 대변한 노래가 없다는 것도 이해된다. 한 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일부 계층에 국한된 시조만을 다룬 것은 조선의 영혼을 노래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미흡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데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시조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조선의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의 의식을 통해 현대정치인들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또한 광범위한 주제로 모아놓은 시조들을 읽다보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골라 읽는 재미도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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