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 4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전하림 옮김 / 메타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메타포의 소설들은, 읽을때마다 새로운 가슴떨림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애써 덮어두고자 했던 진실이 파헤쳐지는 느낌, 그러면서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게 되는 소설들이다. 이번에 읽은 '컷'은 더욱 그렇다. 쉽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망설였던 주제들임에도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메타포의 책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 책, [컷]을 읽는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시파인즈Sea Pines] 아니 [식마인즈Sick Minds]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정신적인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따라 우리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되거나,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대부분이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건 종이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캘리는, 자해를 하고 이곳, 시파인즈에 온 소녀다. 시파인즈에는 캘리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 캘리와 함께 그룹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은 거식증과 마약중독인 아이들이다. 캘리는 그들과 함께 그룹에 속해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캘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잘 모른다. 그것은, 캘리가 절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캘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닐까싶다. 캘리가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도 혼자임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이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던 그날도 캘리 혼자였다. 그리고 입을 닫아버린 캘리. 철저하게 혼자인 그녀다.

캘리는 시파인즈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은, 말을 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그룹 치료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은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문제를 드러낸다. 그러나 캘리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만의 문제로 꽁꽁 싸매고 있는 동안은 캘리의 마음의 병은 치유되기 힘들다. 그리고 시파인즈의 다른 친구들, 간호사, 담당의사는 그런 점을 알고 있다. 특히 함께 치료를 받고 있는 소녀들은, 그것을 이미 경험했고, 알고 있기에 캘리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충고는 위압적이거나 뭔가 가르치려 들지 않는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캘리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관심이고, 따뜻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자해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고 벌을 주는 것과 같다. 무엇이 그녀로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캘리에게는 아픈 동생이 있다. 그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엄마는 늘 피곤하다. 그리고 병원비를 대느라, 혹은 사회경제적인 문제로 아빠도 늘 바쁘다. 그들 사이에서 캘리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동생을 위해 희생을 요구당하고 있는 것이다. 캘리의 외로움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다. 엄마 대신 청소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텔레비전 소리까지 죽인 채 보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부모.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 캘리처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캘 리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캘리와 같은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오히려 그 상황을 자기주도적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기도 한다. 캘리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캘리의 자해도 가족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임시양호선생님이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무관심 속에서 캘리는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고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게 되는 것이다.

‘자해’를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내 주변에도 자신을 자해하고 뭐든지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 사람을 떠올렸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늘 조마조마하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만, 정작 그는 그런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느낀다. 뭐든지 자기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을 더 자책할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생각났고 그도 캘리와 같은 심정일거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그에게 권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캘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자극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적어도 그가 마음의 문을 열 의지가 생길 때까지는 미뤄두어야 할 것 같다. 대신,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정말 잘 한 일 같다. 적어도 그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 지 실마리를 잡은 듯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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