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정당한가 ㅣ 고정관념 Q 13
오드 시뇰 지음, 정재곤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팔레스타인 : 1920년대 초반 영국인들은 이 지역에서 군사적․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위임통치 하의 팔레스타인은 1922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지배권 아래에 놓여있던 지역들을 일컫는다. 바로 오늘날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 이스라엘로 분할된 팔레스타인에 해당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지역 모두가 ’역사적 팔레스타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하면 ’팔레스타인 영토‘는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동예루살렘 포함)에 국한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바로 이 지역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려한다. (p.7)
19세기의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믿는 아랍인들이 주를 이루었다(p.10)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이르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 국가주의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팔레스타인에는 부동산 문제로 인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p.13)하는데 1920년대 말부터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영토분쟁이라는 시각에서 이야기한다. 즉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 점거를 유대민족의 역사적․종교적 권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영토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 역시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가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점령자를 적으로 여겨 투쟁할 것을 촉구(p.23)하는 등 종교보다는 영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팔레스타인에 자신들만의 영토를 가지려고 한 것일까? 고정관념 Q시리즈의 또 다른 책 『유대인』(이하, 『유대인』)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다른 이민자들의 경우(경제적 이유)와는 달리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는 박해를 피해 여러 세기에 걸쳐서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나라(『유대인』p.31)를 떠나 흩어진 것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런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영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유대인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 유대국가가 팔레스타인에 수립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살아남은 유대인 가운데 상당수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는데, 이는 1950년 이스라엘이 공표한 ‘모든 유대인’의 국가라는 조항을 담은 귀국법에 의해 모든 유대인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요구할 수 있다(『유대인』p.35)는 것에 따른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아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를 세우고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불러 모으려는 시도는 일견 당연해 보이면서도, 그들을 박해하고 집단살인을 자행한 당사자들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씁쓸하다.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의 합의 없이, 미국과 소련의 지지를 얻어 수립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행보는 정당성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그런 정당성을 얻기 위해 역사적․종교적 이유를 들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와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또 다른 난민을 만든 것은 아닌지..
팔레스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엇이 있을까? 팔레스타인인들은 항상 테러를 통해 투쟁해왔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테러만이 존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다른 투쟁방식보다 자살테러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거나 각인시키는 강도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면 될수록 더 강한 투쟁방식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무력투쟁은 PLO에 소속되지 않은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슬람 또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오늘날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에는 이슬람교가 지배적이며 이스라엘에서도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10퍼센트를 조금 넘는다(p.71)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이슬람 정치세력은 팔레스타인 건국투쟁에 새로운 지주로 부상(p.75)하는데 이슬람 지하드와 하마스가 대표적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보기에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이질적 종교(유대교)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들 단체는 사회를 재차 이슬람화하는 것이야말로 팔레스타인의 “진정성”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75)
같은 시리즈의 책 『이슬람』(이하 『이슬람』)에서는 9월 11일의 테러와 10월 7일에 알지지라 방송을 탄 빈 라덴이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이슬람 민족이 80년 정부터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칼리프 제도의 폐지 이래로) 모욕을 당해왔다고 강조했다(『이슬람』, p.61)고 한다. 빈 라덴은 “내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기 전에 미국인들은 결코 안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했는데 빈 라덴이 그때까지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했던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명백히 기회주의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그의 오른팔인 쉴레이만 아무 가이트는 ‘유대인들과 미국인들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펼쳤다. 빈 라덴의 행동과 성명서들은 테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이슬람 세계 여론의 일부, 특히 반세기 전부터 원한을 쌓아왔던 아랍사람들에게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슬람』p.62)고 한다. 어찌되었건 미국이 팔레스타인에 맞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민주주의를 수하하기보다는 석유를 둘러싼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 더 급급해하는 것을 보면서, 아랍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간에 미국에 대하여 다시금 원한을 불태우게 (『이슬람』p.147) 되었고,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동의 적이 된 것 같다.
다시 팔레스타인 문제로 돌아오면, 미국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을 궁지에 몰아넣는 수단으로 부패를 내세우곤 (p.113) 하지만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며, 국가구조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p.115)고 한다.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전혀 교류를 하지 않고 살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어떤 고정관념을 깨주는 책이라기보다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또한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영토 확장 또는 영토 확보라는 측면에서 팔레스타인문제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