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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오래 한 사람에게 생기는 일 - 그저 모여 책을 읽었을 뿐인데 세상을 얻었다
김이경 지음 / 유유 / 2026년 9월
평점 :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유유 출판사의 책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200쪽이 넘지만 얇고 가벼워 그리 어렵게 읽을 책은 아니다. 그런데도 며칠 동안 들고 다니며 읽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나 역시 12~13년째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우리 모임과 그 안에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줄을 그은 부분들을 다시 모아 보니, 독서모임의 즐거움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태도에 관한 문장이 많았다. 책을 읽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보다, 그 앎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가 더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모임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자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책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읽어야 하고, 엉뚱해 보이는 이야기나 더디게 이어지는 토론도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이 독서모임이라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자기 속도로 읽는 일과,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는 일은 꽤 다르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내 기준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그 사람과 그 자리를 너무 빨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좌충우돌 종횡무진의 독서는 알았다는 기쁨보다 몰랐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떤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 곧바로 전혀 다른 책을 접함으로써 내가 아는 게 없구나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학자의 독서법이 아니라 교양인의 독서법이다. 앎을 축적하는 독서가 아니라 모름을 일깨우는 독서다. (P.59)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이다. 나는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일을 꽤 좋아한다. 실용적인 책도 좋아하고, 인문·사회 분야의 책도 즐겨 읽는다. 그런데 겨우 하나를 더 알게 되었을 뿐인데 세상을 제법 이해한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다.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재단하거나, 내가 읽고 생각한 것이 더 옳다고 믿게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지적 교만을 경계하기 위해 더 다양한 분야의 낯선 책을 읽었다고 한다. 지식을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잊지 않기 위해서다.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 배움의 증거가 될 수는 있어도, 겸손함이나 이해심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양에 관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해박한 지식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아는 것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책은 내 말과 행동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책 속의 좋은 문장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사람을 대할 때는 그 문장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서모임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문제는 우리 모임에서도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는 주제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이야기가 남편이나 친정·시부모님, 그리고 가장 자주 자녀 이야기로 흘러가곤 한다. 아마 비슷한 연령대의 자녀를 키우고 있어서일 것이다.
누군가의 경험은 추상적이던 책의 내용을 구체적인 삶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말하자마자 평가나 충고가 돌아오는 자리에서는 솔직해지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우리 모임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새삼 생각했다. 그렇구나. 함께 이야기하는 데는 ‘신뢰’가 정말 중요하구나.
개인의 내밀한 사정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마음을 열 수 있다. 반대로 그 믿음이 흔들리면, 같은 이야기조차 개인적인 신변잡기를 듣느라 귀한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신뢰가 있다고 해서 사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져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책으로 다시 돌아오는 균형이 필요하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책을 덮고 나니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보다, 읽은 뒤 다른 사람의 말을 조금 더 잘 듣게 되었는지를 묻고 싶어졌다. 내 판단을 잠시 미룰 수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을 삶에서 실천하려고 애쓰는지.
그리고 우리 모임 구성원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지금 생긴 작은 균열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지, 결국 헤어짐의 이유가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