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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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를 읽고 바로 『중급 한국어』를 펼쳤다.

『초급 한국어』의 목차가 정말 한국어 교재 같았다면, 『중급 한국어』는 글쓰기 강좌의 커리큘럼을 따라간다. 자서전, 글쓰기의 과정과 기술, 유년, 사랑, 대화, 환상, 일상, 죽음과 애도, 고통, 합평, 작품집 만들기. 그리고 첫 수업은 ‘자서전’이다.


“오토(auto), 바이오(bio), 그래피(graphy).

오토는 자기 자신, 바이오는 삶, 그래피는 쓰는 거죠.

말 그대로 풀어 보면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이것이 자서전의 본래 뜻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가, 삶을, 쓰는 것. 사실 이건 자서전만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실은 자기가, 삶을 쓰는 것이니까요.

(…)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p.12)


소설 속 문지혁은 미국에서 돌아와 은혜와 결혼했다. 미국에서 갑자기 한국어 강사가 되었듯, 한국에서는 글쓰기 강좌를 맡게 된다. 그런데 강좌 소개글을 쓰고 커리큘럼을 짜는 일부터 쉽지 않다. 글쓰기의 고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아, 나는 작가들은 이런 건 금방 쓰는 줄 알았다.


당시 지혁은 등단도 하지 못했고 수상도 하지 못했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작가는 아닌 사람. 그렇다고 단순히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진지하게 글을 써온 사람. 언젠가 등단할지도 모르는 예비 작가라고 해야 할까. 그래, 애매한 사람이었다.


이 소설에는 ‘애매하다’는 말이 몇 번 등장한다. 비뇨기과에서 난임인지 불임인지 확인하기 위해 음낭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도 그렇고,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자신을 작가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할 때도 그렇고, 미국에서 돌아와 자신의 위치를 설명해야 할 때도 그렇다.


무엇이라고 딱 잘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

그리고 그런 애매함은 불확실함을 더 크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혁의 글쓰기와 임신, 그리고 육아가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사람.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작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생명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한쪽에서는 생명을 만들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어느 쪽이든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기다려야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을 쓰는 것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

내가 만들어 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시작했다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

그리고 세상에 내놓은 뒤에는 더 이상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중급 한국어』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지혁은 글쓰기에 관한 여러 이론을 자기만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 가르친다. 그중 특히 재미있었던 것이 ‘대화’에 관한 수업이다.


서사가 있는 글은 크게 서술, 묘사, 대화로 구성되는데, 대화는 인물의 성격과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말은 때로 과장하고 숨긴다. 그래서 사람의 진짜 감정과 본심은 말보다 행동과 몸짓에서 더 잘 드러날 때가 있다. 좋은 대화는 그 사람이 하는 말만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입장과 갈등 역시 드러나야 한다. 반대로 정보 없이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말은 ‘대화’라기보다 ‘회화’에 가깝다.


나는 이 부분에서 회화와 대화를 이렇게 구분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외국어 교재에서는 회화를 배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은 교재처럼 말하지 않는다. 내가 예상한 질문을 해주지도 않고, 내가 외운 문장에 맞춰 대답해 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회화를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진짜 대화’를 가장 깊이 경험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려준다.


“결혼을 하시면 됩니다.”


이쯤 되면 글쓰기 강좌인지 인생 강좌인지 모르겠다.


소설에는 코로나 시기의 상황도 등장한다. 은혜와 은채는 감염되고, 그들과 함께 있었던 지혁은 감염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읽었던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코로나’라는 단어를 작품에 차마 올릴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대규모 감염 상황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그것 역시 이제 소설의 배경이자 소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지혁은 삶이 자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계획했던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경험한다.


아이를 원한다고 아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쓴다고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다고 해서 삶이 그 계획을 따라와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지혁은 어느 순간 지금까지 쓰려고 했던 ‘그럴듯한 소설’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그냥 자기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중급 한국어』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던 지혁은 그렇게 비로소 자신이 써야 할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된 듯하다. 어쩌면 글쓰기는 삶을 멋지게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삶을 견디기 위해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쓰지 않았다면 그저 지나가 버렸을 시간들이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지혁은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2012년 여름에 나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p.233)


그런데 이 문장, 낯설지 않다. 그가 쓰기 시작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초급 한국어』다. 『초급 한국어』를 읽고 『중급 한국어』를 읽었는데, 『중급 한국어』의 마지막에서 다시 『초급 한국어』의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첫 페이지에 있던 문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다.


지혁에게 글쓰기 수업은 다른 사람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동시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어떤 일은 실패했고, 어떤 것은 얻었다가 잃었으며, 어떤 순간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조차 애매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살아냈고, 결국 그것을 썼다.


자기가, 삶을, 쓰는 것.


덧붙임. 무영이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무영이가 전해 준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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