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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를 다시 꺼내 들었다.
누군가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저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겠다고?
조금 못된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자격증을 준비한다는데 응원부터 해줄 일이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 있느냐고 내가 판단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꽤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성스럽고 숭고한 일’에 가깝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단순히 조사와 어미, 높임말과 문법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처음 보여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한국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아름답고 바르게 전달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에 ‘적당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과거의 나'를 아름답게 포장한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그 직업을 갖고 있을 땐 지금처럼 한국과 한국문화가 핫한 아이템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소명처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초급 한국어』가 떠올랐다. 때마침, 최근에 『실전 한국어』라는 신간도 나온 것을 보아서 구입한 터였다.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0번째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도 ‘문지혁’이다. 2012년 여름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게 된다.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 자전적 소설이라 현실의 문지혁과 소설 속 문지혁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난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요. 그걸 연결 짓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p.18)
이문장이 소설 초반에 등장하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과 한국어를 가르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왜 ‘은/는’과 ‘이/가’를 다르게 쓰는지 외국인에게 설명하려면 막막해진다. 어떤 표현이 자연스럽고 어떤 표현이 어색한지는 알지만,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 못할 때도 많다.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과 언어를 이해하고 가르치는 능력은 같지 않다.
결국 소설 속 문지혁 역시 한국어 강사가 된 뒤 “한 번도 한국어를 가르친 적 없어서 처음부터 다 배우고 공부해야 했”(p.25)다고 말한다. 모국어라고 해서 저절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정말 초급 한국어 교재 같다.
‘코리안 알파벳’에서 시작해 ‘안녕하세요?’, ‘저는 에런 홍이에요’, ‘어디에 있어요?’, ‘한국어를 공부해요’, ‘동생이 두 명 있어요’,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요’, ‘서울 날씨가 참 좋지요?’ 같은 문장으로 이어진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만나게 될 법한 문장들이다.
그런데 문지혁은 이 단순한 문장들을 그냥 문법 수업으로 끝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를 가르치다가 정말로 우리가 안녕한지를 묻고, 이름을 가르치다가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시간을 가르치다가 삶에서 시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없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p.39)
매일같이 하는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낯설어진다.
간단한 인사 문장 하나도 상대어의 문장으로 번역을 하고 보면, 그것이 일대일로 변환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언어에는 사전적인 뜻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소설 속 문지혁은 자신 안에 생긴 “뜨겁고 아리고 부끄럽고 억울한 감정”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지를 고민한다.
“어떤 감정을 단어 하나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p.66)
우리는 무엇이든 이름 붙이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슬픔, 사랑, 미움, 질투, 죄책감.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은 단어 하나보다 훨씬 복잡하다.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도구일 수도 있다.
문지혁은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생각한다.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건을 전후로 삶이 완전히 달라져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시간도 있다. 그래서 시간을 묻는 질문도 두 가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몇 시예요?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첫 번째 질문은 한국어 초급 교재에 나올 법하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우리의 삶에 관한 질문이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몇 시예요?’라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언어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언젠가 그 언어로 누군가에게 “그건 당신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라고 물을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의 진짜 의미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문지혁에게 뉴욕에서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문지혁은 한국어 강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국어를 가르치던 시간도 끝이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에 있던 문제들이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였던 은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은 결국 어떤 관계로 남게 될까.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토록 바라던 소설가로서의 삶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소설은 이런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한 답을 달아 주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모국어의 단어 하나를 영원히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게 엄마일거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삶의 질문도 좀처럼 친절한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다고 해서 그 시간이 내 안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가족의 병이나 죽음, 사랑의 끝, 이루지 못한 꿈 같은 것에는 정답이라고 부를 만한 대답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소설의 끝에서 다시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나온 시간은 내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지내고 있는지.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초급 한국어』인지도 모르겠다. 배우기는 쉬워도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말들. 우리는 평생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여전히 그 말들의 의미를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초급다운 질문을 나에게도 한번 해본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정말,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