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정원사 무싸
피에르 라비 지음, 이재형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 사막에 정원사라는 직업이 필요한가라는 엉뚱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만큼 나는 사막이라는 곳을 알지 못했고, 정원사라는 의미를 잘 가꿔진 공원이나 대저택의 정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아주 좁고 좁은 의미로 해석한 터였다.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나의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껴야했다.

무싸는, 대장장이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생산물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대로 그들만의 관습과 생활방식에 따라 감사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자급자족적인 생활방식을 보여준다. 그들의 생활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을 통해 균형을 이루어가며 살았다. 그런데, 그 균형이 깨어진 것이 바로 대자본에 의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부터 일어난다.

무싸는, 그 마을에서는 대장장이 솜씨를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장장이라는 직억도 대장장이를 찾는 사람이 있을 때 빛이 나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연장으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를 때 대장장이의 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일터를 버리고 대자본의 손 아래로 들어가자 대장장이의 기술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아닌가.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을 떠올려보라. 젋은이들은 자신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땅을 떠나 문명과 기계의 힘 아래로 들어가 희망없이 살아가게 된다. 문명과 기계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돈, 행복, 희망은 일부 몇몇 사람의 몫일 뿐 대다수의 노동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적어도 자기 땅을 일구고 그 땅에서 나온 것을 취하며 이웃을 배려하고 살아오던 때에는 다같이 넉넉하거나 다같이 가난했었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도 자기 몫을 챙기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대다수의 노동자는 삶을 착취당하며 살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동감할것이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에 남은 사람들 역시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결국은 그들조차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장장이 무싸는, 공장에 가서 일을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해야 할일은 다시 자연으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결국 사막에 수로를 만들고 나무를 심고 생산물을 거두는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래서 대장장이 무싸는 정원사 무싸가 된 것이다. 자연이 내려준 터전에서 욕심내지 않고 희망을 심는 사람. 사막의 정원사.

이 책은, 책 전체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장장이 무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막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서, 왜 정원사 무싸인가를 알지못한 채 책을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싸가 왜 사막의 정원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지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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