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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 행운의 절반
스탠 톨러 지음, 한상복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커피 한잔이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바깥바람이 제법 찬 기운을 품고 있어서일까,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스하게 해주는듯하다.
"행운의 절반 친구"를 손에 들고 거실 넓은 창앞에 앉았다. 표지의 그림이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듯하다. 커피 한잔을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은 바로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소중한 친구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은, 친구와의 감상을 적어놓은 글은 아니다. 친구라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나는 다른 이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추억되는가, 친구를 대하는 자세 등을 통해 내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한편으로는 쉽게 풀어쓴 경제경여서적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고 사람이라는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좁게는 가정에서 넓게는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과연, 친구라고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친구, 내가 힘들고 아플 때 성큼 다가와 손을 잡아줄 친구가 몇이나 될까?
책의 서두는 조가 여자친구인 마시의 수면제과다복용으로 인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참 난감하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데 운전석 옆 창문은 고장이 나 비가 들이치니 이런걸 뭐라고 해야하나. 우울한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데 한몫할 분위기다. 조는 그런 기분으로 한잔의 커피를 마시러 맥스플레이스라는 커피숍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 조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맥스플레이스에서 받은 한장의 쿠폰, 풍요로운 삶을 원하냐는 한마디에 그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살면서 여러가지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대부분은 어떤 사건에 의해서라기보다 어떤 사람에 의해서일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사건만이 기억될 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사람이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조는 최근에 여자친구인 마시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이야기에 주력할 뿐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없다. 이는 이미 그들사이에 신뢰가 무너졌음을 의미하며 그들의 인생에 상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스쳐지나간 사람만도 못한 것이 된다.
p. 54 : 커피가 섞이면 조화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고 사람이 어우러지면 행복과 성취를 만들어내지.
맥스플레이스에서 조는 맥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는다. 우리가 생각없이 마시는 한잔의 커피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여러공정을 통해 가장 맛있는 커피로 탈바꿈을 한다. 한잔의 커피가 마음의 안정을 주고 우울함을 날려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커피의 조화로운 맛과 향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어떻게 사람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세상의 맛은 달라진다.
어떤 이는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놓으면 진정한 친구가 한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구가 많지만 외로운 사람들은 (p. 55 : 외로움은 진심을 얻지 못해서 생긴거라네.) 진심을 얻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있어서이다. 그런 경우 절대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심이 담긴 친구의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먼저 자기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한다(p.86)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도 전에 경쟁하고 이기는 법만 배우니까 세상에 외롭고 불행한 사람이 넘쳐나는(p.87)거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조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시였다. 조는 그런 무시를 당해도 그것이 익숙하게 경험한 일들의 연속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난이나 무시를 그냥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말이다. 조가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심을 담지 않았기에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경멸이다. 또한 마크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러한 활기를 얻고싶어하고 자전거타기를 시작하는 조의 모습 또한 그러한 영향의 산물이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조가 커피를 배우면서, 맥에게서 커피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커피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p. 137 귀를 기울인다는 건 그저 소리를 듣는것과는 다르지. 커피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오감을 사용해야 한다네.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 모두를 말이야. 아! 커피도 그렇지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야. 좋은 친구 사이가 되려면 상대방에게 오감을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네.
오감을 집중한다는 것은 마음을 문을 열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도 문을 꼭꼭 닫아걸고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대사회처럼 네트워트와 기술의 발달로 언제나 사람들과 연결되어있으면서도 외로운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은, 귀만 열었지 마음을 열지 않아서이다.
조 자신은 몰랐지만, 스스로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을 보여주자 그의 주변도 바뀌기 시작했다. 자기자신이 먼저 바뀌지 않은 채 남이 바뀌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결국 조가 회사에 큰 이익을 주었음에도 회사에서 남아있지 못하게 되었어도 그가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조와 함께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모두 조의 곁으로 돌아왔기때문이다. 조가 얻지 못한-잃어버린-것들까지 모두 함께 말이다.
친구란, 계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진심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게산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는 계산이 끝나는 동시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는 그런 계산에 의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의 여자친구 마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진심을 숨긴 채 살아가다간 파경을 맞게 마련이다. 마시가 그녀의 친구인 유명작과 진심을 터놓고 이야기했을 때 그들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물론이고 마시 자신의 삶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늘 티격태격대며 대화가 통하지 않던 조와 마시의 관계 역시 조가 진심을 보여줌으로써 개선이 되었다.
친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사회적 지위, 나이,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진심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인 것이다. 더불어 그로 인해 더 나은 삶, 풍요로운 삶이 따라오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에게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나는 다른 이들에게 친구로서 존재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