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바로 죽음이다. 졸업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나, [죽음]이라고 해서 음울하거나 절망스러움과는 다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나와 관계있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죽음]은 [삶]과 맞닿아있다.




[졸업]




아야는, 자살한 친아버지의 친구를 찾아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살을 시도한 바 있고, 여전히 자살의 유혹 속을 거닐고 있는 아야. 학교에서 어이없는(?)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아야의 모습은 경쾌하다. 툭툭 내뱉는 단어나 행동에서 다른 10대들과 차별되지 않는다. 아야는 아이들로부터 협박문자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무시할 줄 아는 아이다.




이쯤하면, 아야의 왕따가 이야기의 주요내용일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이야기는 아야의 친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40대의 와타나베가 스물여덟에 죽은 친구 이토의 이야기를 한다. 이토가 자살한 이유는 모른다. 젊은 아내와 뱃속의 아이까지 두고 옥상에서 뛰어내려야했던 이토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친한 친구였던 와타나베도 아내였던 가오리도. 이토는 그래서, 그 외로움을, 아픔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토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동안, 와타나베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나도 생각을 하게 된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아야를 보면서, 아무도 자살한 이유를 모를만큼 철저하게 혼자였던 이토를 보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우리가 부딪치는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주위의 시선도 적당히 필요하다.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아야에게는, 어머니와, 그녀를 사랑하는 새아버지 노구치씨의 사랑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관계가 아니라 아야 스스로 한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포트해주는 사람으로서의 가족이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라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한단계 더 나아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바뀌고, 우리는 새로운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또다른 졸업을 맞이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힘들고 아프다고 해서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졸업은 새로운 희망이다.




[행진곡]




죽음을 앞둔 사람을 보고 있은 적이 있는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앞두었을 때는 특히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린 시절을, 혹은 그 사람과의 특별했던 하루를 떠올리기도 했다. 코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동생 마유미,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노래 때문에 학교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마유미의 일은 지금 코지의 아들 료스케와 겹쳐진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해”라는 단어보다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가 없을까? 사랑인줄 알았는데 구속이었고, 사랑인 줄 알았는데 대상에 대한 몰이해였다. 그래서, 네편의 이야기 중에서 [행진곡]이 제일 오래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수업]




한때, 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랄까? 학생 때 보아 온 교사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델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은 행운아이다. 적어도 그런 교사의 모습을 통해 공교육을 불신하지 않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눈에 비친 진정한 스승이란 어떤 것일까? 생활을 감독하고 간섭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세상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면서 엄한 선생님은 교사로서의 권위로 인정받기보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엄한 선생님과 폭력적인 선생님은 다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엄한 교사와 폭력적인 교사가 섞여버렸다. 더군다나 명퇴다 뭐다해서 연륜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없어지신 것도 한몫하겠지.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선생님 父子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지만, 장례식에서 울어줄 제자 하나 없는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추신]

케이치군 나도,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군 어머니란다.

이 한 줄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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