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농장
성혜령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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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이라서, 며칠 동안 하나씩 하나씩 읽었다. 

이 책은, 클럽창비 웰컴박스에 포함되어 온 소설집이라서 읽게 되었다. 

에픽, 계간지 문학동네와 창작과비평 등에서 한번씩 읽었던 소설도 있었다. 

8편의 작품 중에서, 마음에 남은 작품은 '윤 소 정', '간병인'이다.

표제작인 '버섯농장'은 내게 감흥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성혜령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품만으로 상상하기를, 외로움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아팠거나 아픈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나진의 어머니가 돌보던 것들이었다. 작년 겨울, 어머니가 5년간 세번 재발한 유방암으로 죽고 난 뒤에는 모두 나진이 맡았다. 나진은 화분마다 물 주는 주기를 외우고 있었고 분갈이가 필요한 시기도 알았지만 몇개월 만에 대부분의 꽃들은 봉오리째 떨어져 내렸고 나뭇잎은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말라갔다. 어떤 화분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어떤 화분에선 벌레가 알을 낳았다. 그래도 나진은 물 주기를 멈추지 않았다.


-중략-


그제야 나진은 아버지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정리해야 하긴 했다. 화분이 너무 많긴 했다. 항상 그랬듯이 아버지는 혼자 결정하고 혼자 처리했다. 그 뒷정리는 원래 어머니의 몫이었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나진의 일이 되었다. 쪼그려 앉은 채 맨손으로 흙을 쓸어 담으면서 나진은 40년이 넘는 결혼생활이 어머니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유방 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간병인, p.185)


"나진은 마지막으로 치료를 더 받아보자고 떼쓰듯 울던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새까만 아버지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주고 난 뒤, 힘 빠진 팔을 던지듯 자기 무릎에 내려놓고 어머니는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 하자,가 아니라 해라고. 어머니에게는 처음부터 결정권이 없었다. 아버지는 생존에 관해서라면 무자비했다."(간병인, p.191)


나진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봤다. 

저 부부도 참 재미없게 살았겠구나. 

부부라는 껍데기를 쓰고 각자의 삶을 살았겠구나.


나진은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채근에 유전자검사를 하고, 암에 걸릴 수 있는 유전자라는 결과를 받고, 예방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하기로 한다. 예방 차원의 유방절제술을 내가 처음 들었던 것은 안젤리아 졸리가 수술을 했을 때였다. 유방암과 난소암의 위험이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진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더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매달렸다. 어머니는, '하자'가 아닌 '해'라고 답을 한다. 그 치료는 누구를 위한 치료였을까? 


20년쯤 전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수술을 위해 개복했지만, 수술을 하지 못하고 덮었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수술을 하기 전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암이 자라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일상 생활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수술을 하지 않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살 수 있는데까지 사는 게 어떨까 했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가 끝까지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왜냐면, 돌아가시고나면 그 수술 한번 안해준게 마음에 남을거라고... 


그랬을까? 아픈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을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만큼 다 해줬다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치료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진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매달려 마지막 치료를 더해보자고 하는 저 장면이, 어머니가 '해'라고 말한 저 장면이 바로 그때를 연상시켰다. 


나진이, 암을 예방하기 위해 절제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동안 간병인인 미형을 만난다. 미형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고 한다. 나는 모르는 회사의 파산에 대해서도 미형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산 40년이 아버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함께 산다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 남보다 더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라는 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가족의 의미 같은 걸 되새겨볼 생각은 없다. 나 역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신경 쓰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소설을 읽다가, 그런 내 모습이 같이 읽혀졌다. 


외로움, 고독, 그리고 소외. 이제는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 닥치는 불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뭐 그리 대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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