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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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작가의 '스티커'를 읽은 후, 이 책 '비스킷'을 읽게 되었다. 순서야 상관없겠지만, '스티커'와 '비스킷'을 읽고 나니 작가가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대충 감이 왔다. 대충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작가의 마음이 아니니 틀릴 수도 있어서.. 라는 변명을....ㅎㅎㅎ 프롤로그를 옮겨 적어본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구운 과자인 비스킷처럼 그들은 쉽게 부서지는 성향을 지녔다. 비스킷은 잘 쪼개지고, 만만하게 조각나며,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에 고립된 비스킷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비스킷은 눈에 잘 띄지 않기에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넓디넓은 세상에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 사진에 희미한 형상이 찍혔다고 호들갑 떠는 경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을 때는 대부분 주변에 비스킷이 있다. 나는 비스킷을 소리로 인지한다. 미약한 숨소리, 힘없는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옷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안다. 일단 그 소리를 인식하면 곧이어 모습이 보인다. 비스킷은 대체로 형체가 희미하다. 희미한 정도는 비스킷이 자신을 인식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비스킷의 상태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반으로 쪼개진 상태.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이 "어? 너 여기 있었어? 몰랐네."라고 말하는 단계이다. 몸 선이 흐리고 전체적으로 선명하지 않다. 시력이 좋은 사람은 1단계 비스킷을 만나면 어쩐지 어두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2단계는 조각난 상태, 열 명 중 다섯 명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큼 존재감이 불안정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약하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를 보는 것처럼 흐릿해서 보았어도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2단계에 해당한다. 종종 목소리를 통해 존재감이 드러나서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주변인들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3단계는 부스러기 상태. 존재감이 없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단계다. 투명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잘 보이지 않아 나도 소리로 찾아내기 힘들다. 이때까지 비스킷 3단계인 사람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비스킷 3단계는 오랫동안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왔기에 주위에서 덩달아 관심을 꺼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사라진 비스킷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더욱 숨기는 악순환에 빠진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비스킷의 단계는 수시로 변한다.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가 재건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을 단단히 지켜 나가며 아예 비스킷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비스킷은 어디에든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 비스킷이라 이름 붙인 존재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 프롤로그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 주변에 정말 비스킷 같은 존재들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날 졸업 앨범을 들춰보다, 어, 우리 반에 이런 아이도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와 연결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친구, 어쩌면 그 아이들이 비스킷과 같은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성이는 청각과 관련된 병을 치료받고 있다. 소리강박증, 청각과민증, 소리공포증. 이 세가지 병이 진짜 있는 병인가 찾아보니, 청각과민증이나 소리공포증은 병명이 보인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할 경우이다. 나는 소리에 대해 그리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잠자는 시간이나 집중이 필요할 때는 소리에 민감해지기도 한다. 제성이는, 소리와 관련한 병을 고치기 위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고 생각해서일 거다. 제성이는 소리 때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만큼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모든 소리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땐 공사장 소음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어떨 땐 시계 초침 소리에도 크게 반응한다. 제성이에게는 어린이집 동창들이 있는데, 덕환이와 효진이다. 덕환이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절친이고, 효진이는 비스킷 3단계에서 구해낸 아이이다. 비스킷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에 효진이를 만났다. 그 당시 효진이가 비슷킷 3단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본 이후 그들은 함께 하게 되었다. 비스킷을 찾아낼 수 있는 제성이, 비스킷을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덕환이, 그 자신이 비스킷 3단계였다가 존재감을 찾은 효진이, 이 세 명의 친구들은 아지트에 모여 다른 비스킷들을 구해내기 위해 함께 한다. 물론 제성이의 생각과 달리 효진이가 많이 앞서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비스킷이 된 존재들을 찾아 구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주변에서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비스킷이란 것이 애초에 무관심 속에서, 혹은 무시 당하면서 되는 것이다 보니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면 필시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제성이가 생각하고 있듯이, 비스킷이 다시 제 모습을 찾는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비스킷이 된 아이에게 어떤 관심이, 어떤 상황이, 필요한지는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말수가 없는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 배제되기 쉽다. 과묵하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못하는 건 억울한 면도 있지만, 학교가 원래 그렇다. 내성적인 아이보다는 외향적인 아이가 더 주목받는다. 내성적인 아이는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말수가 없어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은 비스킷이 되지 않는다." (p.45) 학폭 피해자였던 도주는 논리정연하게 말도 잘하는 편인데, 왜 비스킷이 된 걸까? 환경운동가라는 도주의 꿈 이야기를 하며, 제성이는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네가 잘 안 보이는 거 알고 있냐고. 도주는 자신을 아이들이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앞으로도 영원히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튀게 되면 또 맞을테니까. 그렇다. 도주는 아이들 눈에 튀는 아이라서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채식주의자라서. ​도주가 비스킷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주의 행동(그러니까 채식주의자이면서 환경운동가인)이 튀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면 된다. 그 해결책을 덕환이가 찾아 준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제성이가 만날 수많은 비스킷들에 대해 생각했다. 비스킷을 찾아 비스킷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 그리고, 제성이는 비스킷을 구해내는 일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네가 괴로운 일을 당해 숨고 싶었던 건 잘 알아. 근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존중받을 수는 없어. 네가 먼저 널 긍정해야지 다른 사람도 동화될 수 있잖아. 괴롭힘에 깨진 네 마음, 꿈, 기분 같은 것들을 계속 말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널 이해할 수가 없어.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널 이해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 사람이 생길 때까지 우리 휘둘리지 말고 같이 자신을 지켜 내자."(p.78) 제성이와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사실, 좀 청소년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 약간 교과서같은 정답들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그런 느낌을 배워갈 수 있다면 이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문학적인 문장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건... 일단 욕심.. ^^ ​(도주 덕분에 제성이는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데, 이 작가가 환경 문제에 꽤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스티커'라는 책에서도 나온다.) 다음으로 제성이가 만난 비스킷은, 지안이다. 볼펜 사건으로 보노보에게 쫓기던 제성이가 층간 소음 유발자인 윗층에 살고 있는 지안이를 만난다. 그리고 이모집 2층에 있는 비스킷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꽤나 영화같은 스펙타클한 액션이 진행된다. "나는 비스킷에게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숨죽인 채 지내느라 힘들었을 거라고, 차가운 다용도실에서 그만 나가자고 말했다. 자존감은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믿느냐를 보여 주는 지표이다. 자신으로부터 더는 도망치지 않는 길이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비스킷이 점차 존재를 드러냈다. 아주 희미하게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나는 비스킷을 조심스럽게 업었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건 뼈뿐이다. 뼈를 어르며 내가 느낀 감정은 정의감도, 연민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참담함이었다. 얼마나 오래 학대한 걸까. 얼마나 오래 학대당한 걸까. 참담함이 분노로 변하여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비스킷이 서서히 내 등에 기대어 왔다."(p.198) ​제성이는 비스킷을 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아닌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비스킷으로 만들어버린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이 아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이모의 도움도 받는다. 제성이는 스스로를 '소리'에 가둬버렸지만, 제성이 옆에는 친구들이 있고, 제성이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제성이의 소리 강박증이 완전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이 났지만, 제성이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서 자신의 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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