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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와 나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새, 내 나이도 마흔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이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한 이십년 정도 살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음, 그러면 내 아이 스무살에 떠나야한단 말인가....그건 좀 난처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지금 나의 최대고민은 무엇이지?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꿰어나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달려왔고, 또 앞으로도 한가하지는 않을 전망(?)이니 내 삶에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끼어들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무기력은 순식간에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무엘 폴라리스 역시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 어느날 갑자기 절필을 하고 삶의 무기력에 빠져든 사람이다. 그의 무기력함은 그의 가족들로부터도 소외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아내의 외도도 그에게는 자극이 되질 못한다. 딸의 연애도 그에게는 시비꺼리가 하나 늘었을 뿐 그의 삶에 자극이 되어주질 못했다. 그렇게 한도 없이 무기력해진 그가, 권총 하나를 사서 보관하면서부터 일종의 비밀이 묘한 자극이 되어준것같다. 생활과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아무 의미없이 느껴지던 그에게 권총은, 하나의 돌파구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 권총으로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단지 남모르게 그걸 가지고 있다는 쾌감이랄까? 결국, 그 권총을 발견한 아내와, 그가 권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의 애인, 또 사무엘이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는 의사에게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다시 활기차게 움직인다.
아무것도 의미없이 느껴지던 사람이 어떤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무섭기까지하다. 도대체가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권총으로 뭔가 일을 저지를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속을 알지 못하는, 알더라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보기에 권총은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그 위협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무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오던 그가 뭔가를 탁 놓쳐버린 느낌, 그때문에 그가 권총이든, 케네디의 시계든 집착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의 삶이 우울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장 폴 뒤부아식의 이야기 흐름은 오히려 사무엘을 밝은 모습으로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강박은 책을 읽는 우리마저 강박에 시달리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전환기가 몇번 찾아올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뭔가를 잡기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삶을 조금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네디의 시계는, 우리 마음 속에도 존재한다.
(별점 세개에 대한 변을 하자면, 이 책 읽느라 근 한달이 걸렸기때문이다. 아주 개인적인 별점이므로 신경쓰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