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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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써보자고 생각한 후, 어느 날 문득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 나름의 문장으로 써 보자.'라고 결심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실 문장력을 인정 받고 있는 작가기에, 일상의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우리와는 다른 글을 써내겠지만, 어쩌면 이런 문장은 독자인 나도 '써 볼까'하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

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18~p.19

하루키가, 그리고 헤밍웨이가 하는 저 말은 비단 소설 쓰는 작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대입하여 이해한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누구나 서툰 시기를 거치게 되어있다. 그 시기를 지나면 당연히 숙련된 작업 속도와 능률이 나타난다. 그러나, 서툴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해버리거나 요령만 피워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당장은 모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비슷한 조언을 한다. 그 조언을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상대의 자유지만, 적어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사람을 당하지는 못한다.

나와 같은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 새삼스럽게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다소 어리석은 일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젊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내 안에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는 혼자서 말없이 책을 읽거나,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쪽을 좋아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중략)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그다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

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p.34~p.35

나는 하루키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번씩 읽다보면(아, 독서동아리에서 추천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키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소설가와 공통점이라니.. 하하.

예를 들자면 위에 인용한 저런 점이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사회생활을 위한 나의 최소한의 노력이고, 나는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혼자 있는 사람이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혼자 있어도 할 일이 엄청 많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꽤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공부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소정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든 마친 다음, 소위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번역 기술도 그렇게 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내 돈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걸렸고 시행착오도 거듭했지만, 그런 만큼 배운 것은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다.

2장.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p.63

학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은 딱 그만큼의 기본을 익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최고의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경험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회인'이 되어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고 익힐 때,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의 노력과 연습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 그만큼의 노력을 하게 된다. 당연히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고, 가끔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기초 지식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루키는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p.75)라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것을 자기 안에 시스템화해놓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인생을 큰 동그라미로 친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일들이 모두 각각의 우선순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오래할 수는 없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자신의 의지일 수 있다.

하루키의 달리기는, 그의 글쓰기와 닮아있다. 오랫동안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그가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과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는 없다. 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절대 '연습량'이 충분해야 한다. 하루키가 마라톤에서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이 '적당'히 했던 오만함때문이었다.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중략)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중략)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요구된다. (중략)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4장.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p.120~122

달리기는 결국 글쓰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은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싶은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하루키에게 있어서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거나 길고긴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그러한 내적 이미지를 갖고 장편소설을 쓴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알고보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데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나날이 오늘따라 한심해졌다. 뭔가 시작하기에 내 나이도 늦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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