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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이 있어요 ㅣ 알맹이 그림책 71
오시은 지음, 전명진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4월
평점 :
몇 해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 내가 제주도를 가 본것은 딱 두번인데, 곤을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가보지 못했다. 그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4.3관련 장소들이 몇군데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는 상처로 남아있을 일이다. 내가 몰랐다고 해서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을 받아들고 앞 표지를 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 동백꽃이다. 곤을동이 뭔지 모르지만 동백꽃을 보는 순간, 혹시...하였다. 확실히 이미지화 된 것들은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그리고 한번 각인된 이미지의 의미는 잘 바꾸기도 힘들다.
그림책은 곤을동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름답고, 화사하고 정감있게 그려낸다. 일상이 편안하고 조용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던 그 곳이 그 난리가 나기 전에 어땠는지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제주 방언을 잘 모르지만, 그냥 그 느낌 그대로 읽어본다. 4.3사건을 겪으며 사라진 마을이 한두개가 아니건만, 이 곤을동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곤을동은 바닷가 쪽에 있는 마을로, 1949년 1월 4일에 마을이 모두 불타버렸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으로 산간 마을도 초토화가 되었다. 해안가에서는 유일하게 사라진 마을이 곤을동이라고 한다.
"너 빨갱이지? 폭도들 어디 숨겼어?"
빨갱이란 단어에 대해 지금 젊은 친구들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어렸을 때 엄청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이념 대립으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실체도 없는 이념때문에 싸우는 모습은, 극과 극으로 치달은 종교전쟁을 떠올린다. 이런 전쟁 중에는 당연히 관련이 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이 발생한다.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이 일은, 7년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행해진 국가 폭력에 관한 일이다.
최근 또 이 사건을 두고 망언이 오고간다고 한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기에 딱 좋은 소재가 아니겠는가. 정치란 게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이라면, 그런 정치는 필요없다. 서로 잘 살자고 움직여야 하는게 정치가 아닌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권력을 잡은 이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쓴가에 따라 무고한 시민들이 어떤 손해를 보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뻔히 들여다 보인다.
그림책 한 권을 읽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한다. 곧 4월이 올 것이고, 4월에는 선거도 있으니... 내 생각은 자꾸 거기까지 뻗친다.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해야한다. 자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평화로운 마을이 왜 하루아침에 사라졌는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함께 이야기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