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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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책을 들고다니며 한문장 한문장 읽고 있었는데, 올 1월 회사에서 소개하는 책도 버지니아울프를 다룬 책이라서 이 묘한 인연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올해 어쨌든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두권이나 읽게 된 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엮은이의 말대로 작품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더 유명했다. 게다가 작품이 난해해서 읽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으니, 다가가기 더 힘들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엮은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어렵게 다가오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바라보며, 그 흐름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파트1,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다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는 지식인이라 불리던 남자들조차도 여성을 하나같이 형편없는 존재로 규정하며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결국 그녀가 도달한 답은 '고정된 수입'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Women have sat indoors all these millions of years, so that by this time the very walls are permeated by their creative force, which has, indeed, so overcharged the capacity of bricks and mortar that it must needs harness itself to pens and brushes and business and politics.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p.28


19세기 초는 여성이 쓴 작품으로 서가의 한칸을 채울 수 있을만큰 여성문학이 발전했던 시기이다. 이때는 대부분이 소설을 썼는데, 제인오스틴의 사례를 보면, 가족으로부터 빈번하게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산층 가정집의 구조를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브론테 자매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경험 부족이 작품의 한계로 이어진 것처럼. 그래서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주어진다면 더 훌륭한 여성 문학가가 탕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 깊이 공감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성도 당연히 자기 직업과 경제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자신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이 높은 교육열은 그 집안 여성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남성만을 위한 교육열이었던 적도 있다. 여성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지 이제 겨우 몇십년인데, 남성 역차별이라 하며 핏대를 세우는 이들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그 시절과 지금은 분명히 많은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 사실이다. 


it is fatal for anyone who writes to think of their sex. It is fatal to be a man or woman pure and simple; one must be woman-manly or man-womanly. The whole of the mind must lie wide open if we are to get the sense that the writer is com-municating his experience with perfect fullness.​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별을 의식한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의식적인 편향을 두고 쓰는 글은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마음 속의 남성과 여성의 협동이 일어나야만 예술 창작이 온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3기니, Three Guineas]에서는 전쟁과 독재를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낳은 폐해(p.37)라고 말하며 남성 중심의 엘리트 교육과, 대다수 고위전문직을 남성이 독식하고 있는 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반박한다. 그렇다고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그녀의 문장을 일부만 떼와서 극과 극으로 갈라치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남성이 조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영문 필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에도 주제문장을 필사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잘 활용할 수 있었다. 


부록,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I am I: and I must follow that furrow, not copy another. That is the only justification for my writing, living.


나는 나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내 글, 삶의 유일한 정당성입니다.


I will not be "famous," "great." I will go on adventuring, changing, opening my mind and my eyes, refusing to be stamped and stereotyped. The thing is to free one's self: to let it find its dimensions, not be impeded.


나는 "유명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모험을 계속할 것이고, 변화할 것이고, 내 마음과 눈을 열 것이며, 낙인이나 고정관념을 거부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차원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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