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열네살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 나이 열네살때 무엇을 했는지, 열네살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열네살이라면 막 중학생이 되었겠지. 초등학교에서 맏언니역할을 하다가 또다시 막내가 된 열네살. 그때 난 무엇을 했더라. 한동네 친구들에게서 벗어나 다른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햇던 것 같다. 각기 다른 학교에서 온아이들과 사귀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 도서반 활동을 하면서 겁도 없이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다가 넌저리를 치며 던져버렸고, 별 의미없었던 석차에 신경써가며 책을 달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내게 있어서 열네살은 그렇게 기억된다.

 

그런데, 이 아이, 테레제는, 열네살에 너무 많은 걸 겪는 것 같다. 부모의 이혼에다가 자폐 증상이 있는 언니에, 맘에 드는 남자아이까지 생겼다. 어찌보면 참 우울한 일들인데 테레제는 우울해 하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은 청소년기이 성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텐데 테레제에게는 그저 주변의 일일 뿐이다. 왜냐면 테레제에게는 얀이라는 또다른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자폐증상이 있는 언니도 테레제는 그다지 귀찮아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테레제에게는 언니도 그녀의 일상일 뿐이다.

 

테레제가 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를 정한 데에는 오로지 [얀]과의 대화를 위해서이다. 사실, 제목과 표지의 내용으로 보자면 뭔가 비장한 각오로 만든 리스트같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열네살 소녀의 발칙한 꿍꿍이가 결합된 리스트이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세상이 끝나기전에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를 돌아보면 열네살 소녀가 꿈꾸는 소소한 희망사항들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하지 못한 일들이다. 그래서 테레제의 리스트는 의미가 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읽는 것과 클래식연주에 참여하는 일들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적어도 노르웨이에서는 거의다 기독교인(p.26)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성경의 이야기를 다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핵전쟁이나 고문, 폭동, 가난, 고아원에 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부모가 싸우거나 헤어지게 되는 것(p.23)이라고 말하면서도 테레제는 의연하다. 오히려 그러한 테레제의 행동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에게 지나친 의존을 하고 있는 한국아이들과는 달리 보인다.

 

테레제가 세상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 리스트 중에서 가장 용기있게 실천한 것은 로마로 떠난 여행이다. 자기가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있을 때 어른(p.133)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자면 테레제의 여행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한발자국인 것이다. 나도 20대에 가방 하나 들고 일본으로 간 적이 있다. 1년이라는 기간을 일본에서 보내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무모한 나의 용기뿐이었다. 지금 그때처럼 가방 하나 들고 무작정 떠나라고 한다면 못할 것 같다. 자기가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생기는 때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어른이 된 이후에는 세금을 떼먹어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p.134)게 될만큼 능구렁이가 되거나 생활에 쫓겨사는 것이 어른이 아닐까.

 

어른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운 것은 그때문이다. 물고기들은 우리들은 우리가 쳐다보든 말든 상관없이 언제나 거기에 있(p.134)다는 이레나의 말은 우리가 부정하고 회피하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므로 이왕이면 삶을 즐기라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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