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미술관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박민경 지음 / 그래도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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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던 저자는 그림에서 인권을 보기 시작했다. 들라크루아의 <키오스 섬의 학살>은 그리스 독립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프랑코 독재가 자행한 끔찍한 국가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저자는 인권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이 책은 인권의 주요 개념을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 등 크게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제 1 부 여성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 1 조 -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

그녀는 정말 희대의 살인마였을까?

헝가리 화가 이슈트반 초크의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이라는 작품의 배경은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이다. 바토리 백작부인은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처녀의 피를 마시고 그 피로 목욕도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잔혹한 전설은 자극적인 소재와 비극적인 결말 덕분인지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바토리 백작부인은 퇴폐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중세 유럽이야 마녀사냥이 판을 치던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시대였다고 해도 오늘날에도 그런 시선으로 여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바토리가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없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한 여성을 미치광이이자 희대의 살인마로 만든 것은 아닐까? 문제는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이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있다는데 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여자가 잘나가면 꼴사납다'와 같은 400여년 전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여자는 그 정도 돈만 받고 일해도 되지', '여자가 일해서 버는 돈은 반찬값 정도나 되지', '남성 관리자 말을 잘 들어야지', '여자는 감정적이고 지능이 부족해서 선거에 참여할 수 없어' 이제 '여자는 ~해야 한다'라는 시선을 거두어들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p.19)


그림을 매개체로 하여 저자는 인권을 풀어낸다. 그리고 다음에는 관련 있는 키워드를 설명한다. <고문하는 바토리 백작부인> 그림 뒤에는 '마녀사냥'과 '성차별'을 소개한다.  


제 2 부 노동

모든 사람은 노동 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


<볼가 강의 노동자들>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볼가 강에서 배를 끌어내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노동자들의 얼굴은 고단함으로 가득하고 그 사이에 아직도 10대로 보이는 소년도 힘겹게 일을 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노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노동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한 가치를 가진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와 제24조는 노동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일,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그리고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야가의 권리를 가진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지키고 있는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가슴 아픈 사고들을 떠올려 보라. 저자는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국가가 헌법으로 보장해주기를 촉구한다.


제 3 부 차별과 혐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2조-


스웨덴 화가 다비드 클뢰거 에렝스트랄의 <흑인과 앵무새와 원숭이>는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좋은 옷을 입은 흑인 소년의 행복한 모습이지만, 그 이면을 알면 그림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즉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유럽에서는 동물원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그림 속 흑인 역시 수집된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잇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물건처럼 매매 대상이 되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희생을 했어도 여전히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오고 차별은 멈춰지지 않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그 선언의 적용 대상을 '모든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제 4 부 국가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제3조-


한국에서의 학살_파블로 피카소

피카소는 한국과의 인연이 있는 화가이다. 그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미군이 개입해서 발생한 황해도 신천 양민 학살사건이다. 그림의 왼쪽에는 약자인 여성, 노인, 어린아이들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총칼로 무장한 남성들이 있다. 무방비상태의 한국인을 제국주의의 상징인 미군이 위협하고 있는 모습(p.194)이다. 피카소가 그린 작품임에도 2022년에서야 한국에서 최초로 전시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메두사의 땟목>이라는 테오도로 제리코의 그림을 소개한다. 이 그림은 메두사호라는 실제 군함의 난파 사건과 당시 버려진 열 다섯 명의 생존자의 실화를 담은 그림이라고 한다. 메두사호는 국가가 관리하던 군함이었음에도 고위직 장교들만 살리고 나머지 선원들과 승객을 버렸던 것이다. 이후 열린 재판에서도 고작 3년 형만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 한국사람이라면 아마도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까?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재난 피해자들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는 비단 세월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들이 있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가 국가일 이유가 있는가? 그 선봉에 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치인들의 행태가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제 5부 존엄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세계인권선언> 제30조-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첫번째 조항에서는 그에 앞서 '모든 사람의 존엄함'을 강조한다. 직업 선택의 권리와 존엄권 모두 중요한 권리이다. 그러나 제30조에 따르면 여기에 나열된 권리를 파괴하는 활동에 가담하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떠한 환경에서든 인간의 존엄은 가장 중요시되어야 한다. 


확실히 글로만 표현되어 있던 조항들을 그림과 연결지어 설명하니 이해가 잘 된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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