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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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정직한 바보도 바보도 바보는 바보 아닌가. 나이 오십에 바보라니.’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래야 별건 아니었다. 과학교양서를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게 다였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 바보는 면한 것 같다. 그게 자랑이냐고? 그렇다. 나는 ‘운명적 문과’다. 그 정도만 해도 뿌듯하다. 어디 자랑하고 싶다.(p.19~p.20)

유시민 작가의 새책을 읽었다. 제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니.... 평소 나 역시 완전 문과형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설픈 문과형이랄까? 문과로도 완벽하진 않지만 이과로는 완전 꽝이기에, 의도적으로나마 책을 읽을 때 과학 도서를 포함시키곤 하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해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법 쉽게 설명한 책이나 에세이처럼 스토리텔링된 책이 많아서 조금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시민 작가가 문과의 마음을 대변하며(그러기를 바라며) 과학 공부를 하는 과정을 말하나 싶어 반가웠던 것이다. 유작가는 본인이 문과형이라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서울대를 나온 문과형은 그래도 좀 나을 것이다. --> 문과 이과 구분에 큰 영향이 있을까 싶은...

그런데 일반인인 우리를 떠올려보자면,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저 바닥에서 놀고 있거나, 노력하고 때로는 돈을 들여도 점수 향상이 없는 사람들이 문과를 많이 택하지 않았나싶다. 요즘이야 취업을 고려해서 이과를 더 많이 택한다고 하나... 어쨌든 나는 국어 점수 하나 믿고 살았던 문과형으로서... 음음.. 그래도 과학책을 읽을 때 제법 재미를 느끼곤 했는데 숫자만 안나오면 말이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과학공부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따라가보기로 했다.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p.27)

"어느 하나 쉬운 질문이 아니었지만 인문학자들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했다. 그게 과학자와 다른 점이다. 과학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나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하고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다. 인문학자가 잘못한 건 없다. 인문학은 그런 학문이다. 과학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매우 그럴법하거나 그럴 것 같기도 한 주장과, 별로 그럴듯하지 않거나 아주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p.28)"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 작가의 오디오 팟캐스트를 들었다. 책을 읽고 난 뒤 들어서인지 내용이 이해가 쏙쏙 되면서 작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속도 달라졌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주제와 내용은 아는데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떠올리지 못하는 때가 잦아졌다. 어떤 사건과 사람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내용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운 주연배우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끙끙댄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써도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오후만 되어도 속도가 느려진다. 세상에 대한 생각,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바뀌었는지 나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는 10년 전과 다르다. 한 달 전과도 같지 않다. 어제의 나와 같은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나를 나로 여긴다. 남도 나를 변함없이 나로 대한다. 의사는 예전 진료기록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진단하고, 국세청은 지난해 소득에 대한 세금 고지서를 올해의 나한테 보낸다. 법률적·생물학적으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 손가락 지문은 흐려졌지만 형태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행정안전부 데이터베이스에 지문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동일인임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달라졌고 더 달라질 것이다. 내 철학적 자아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어느 시점의 내가 다른 시점의 나와 다르다면 어느 것이 나인가? 오직 현재 시점의 자아만 의미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한 일을 이유로 지금의 나를 비판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p.44~45)"

과학공부를 하면서도 인문학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솔직히 나는 그정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는 사춘기 시절 이후 내게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 사는 게 뭔지 내가 누군지 이런 거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그런거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과학적 사실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발 뒤끝이나마 따라갈 능력도 없지만 나로 하여금 각성을 하게는 하였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50년쯤 남았다고 볼 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하지는 않갰나. 나 역시 지금까지 배척했던 과학에 조금은 더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팟캐스트에서 '인문학을 하다가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과학을 하다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문학에 매진하다 보면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에 쉽게 접근하기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과학을 한 사람들에게 '인간,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으로는 생각보다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공감을 하다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과학'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한 기술'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 세태를... 인문학이 그래도 조금은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p.93~p.94)"

"소프트웨어의 성능 개선과 데이터 증가 효과가 하드웨어 퇴화로 인한 기능 저하를 상쇄하는 동안은 더 지혜로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화로 인해 하드웨어가 심하게 나빠지면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한다. 기존 데이터를 상실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신규 데이터 유입은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덜 똑똑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어리석어질 것임을 알 정도로는 똑똑하다.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 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p.99~100)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p.127)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동안 조금씩이라도 과학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나를 칭찬한다. 그것이 실제로는 내 머리 속에서 지식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을지언정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않았을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잘하는 것만 갈고 닦아도 모자랄 시간에 잘 못하고 어려운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진로를 정하고, 성과를 내야 할 때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딸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고교학점제 때문에 지역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정말 재미가 있고 새로운 걸 알게 되어 즐겁다는 것이다. 그 공부가 왜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지 알아? 시험을 치지 않기 때문이지. 아는 즐거움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테스트 같은게 없어야하니까^^ 이것과 같지 않을까? 내가 지금 과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의외로 늦게 트인 머리로 세상에 일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달라질 건 거의 없겠지만 그동안 어렵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분명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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