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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온다리쿠의 책에 빠져 - 중독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새 책이 보이니 사게 되고 또 읽게 되는, 혹은 실망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보게 되는 - 읽다 보니 어느새 12권째이다.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은 게 90년대 중반 한국작가들의 작품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아마도, 그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주제, 똑같은 이야기에 질리게 되면 온다리쿠를 나에게서 떠나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번역되는 소설의 양이 많아지면서 내용도 약간씩 달라지는 듯하다.
어쨌든 서두부터 이런 잡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일각에서 보여지는, [온다 리쿠를 추종하는 무리들, 온다 리쿠에 열광하는 무리들]이라며 낮춰보는 시각때문이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르듯이 미미여사에게 열광하는 이가 있듯이 온다리쿠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온다리쿠의 이전 책들에서 미소녀 중심의 학원물 같은 이야기에 약간 질리기도 했지만 연이어 나온 책들에서 달라진 스토리를 만남으로써 그 지루함에서 탈피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온다리쿠의 소설들이 장르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차치하고서라도 자꾸 읽게 만드는 중독성을 가진 것은 틀림없다. 이전의 소설에서 보았던 온다 리쿠의 세계와는 많이 달라진 듯 하지만, 이것 역시 온다 리쿠라고 생각한다.
[유지니아]라는 소설을 다 읽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의 핵심포인트라는 군청의 방이니 백일홍이니 하는 것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히사코가 범인이라는건지 아니라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는 동안, 똑같은 것을 보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대상에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서술이 틀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묘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보이는 사람은 오로지 시각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세계를 본다. 그러면, 보이는 우리가 더 많이 볼까? 보이지 않는 그들이 더 많이 볼까?
생일날 일가족과 동네사람들이 독살된 사건이라는 개요를 가지고 온다리쿠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결국은, 그 이야기들이 각각의 단편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범인이야, 히사코면 어떻고 히사코가 아니면 또 어떤가? 우리가 접하는 세상의 수많은 뉴스들은 확실하거나 증명할 수 있음을 근거로 해야하지만, 사실은 온갖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 뉴스를 보며 내 맘대로 해석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유지니아]에서 보여준 사건들 역시, 그런 매스컴의 보도 중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여름날, 그래도 몇시간 집중해서 읽히는 책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즐거움이 있다. 어떤 이는 풀리지 않는 이야기에 갑갑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각각의 단편을 읽는 여운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