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중이다. 토지 10권을 읽었다. 이제 딱 절반을 넘어왔다. 생각보다 쭉쭉 읽히기 시작해서 남은 책을 읽는데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는 한 자리에서 쭉쭉 읽어 마무리를 짓는 것이 나에게는 맞는 방법이다. 띄엄띄엄 읽으면 사람들도 기억이 안나고... 핫하...

'결혼문제만이 아니다. 정열이 모자라는 여자, 나는 정열이 모자라는 여자야. 오빠는 신여성에게 정열이 부족하면 죽도 밥도 아니라 했다. 그래, 죽도 밥도 아니야. 내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두려워서 떨었다.' (p.25)

'어쨌든 나는 죽도 밥도 아닌 것만은 확실해. (중략) 아버님이 살아 계실 적에 열심히 공부해서 칭찬받고 집에 들면 집안 살림 도와주어서 칭찬받고 그것이 내 전부였어. 그것이. 교장 선생님은 여성교육의 선구자라 하셨다. 여성교육의 선구자, 선구자 될 생각도 없으면서 뭘 여자가 시집이나 가지, 하면 불쾌해진다. 오라버니 말대로 자발적으론 아무것도 못하면서 최고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은 있어서, 그 무거운 짐짝 같은 선생, 직업, 여성교육의 선구자, 그걸 끌고 막연한 독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역시 비참하다. '(p.26)

토지를 읽다보면 신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신여성'이라 불렸던 여성들의 자의식,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조선 남성들의 시선들 말이다.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될 생각은 없으면서 최고교육은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서라는 말은 명희의 생각에서 나왓다기보다 그 당시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교육을 받은 당사자들도 신념이나 학문에의 의지가 강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아니지요. 나는 분명히 지금 여자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신교육을 거부하고 용납하고 하는 데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달랐어요. 남자들에게는 일부 서민층을 제외하고 지식인은 남아도는 형편이었고 벼슬 못한 선비들이 우글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갈 거요. 그러니만큼 남자들은 신교육 혹은 신학문을 거부하는 데도 그만한 명분이 있었을 것이요, 받아들이는 데도 그럴 만한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니 어느 편이든 자각하고 취한 행동이지 여자들같이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여자들의 경우는 지식의 바탕이 전혀 없이, 전통도 없이 바로 들이대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았다. 하면은 그것을 곧 학문으로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학문이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모르거든요. 엄연히 말하여 오늘날 우리가 해외에서 받는 교육은 학문이기보다 태반이 기술인 겁니다. 착각을 하고 있어요. 모두가, 특히 여자들이 말입니다. 의사나 간호원이나, 재봉, 요리가 포함된 가사과나 심지어 하란사가 미국서 영문학을 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로 시작한 그네들조차 학문으로까지 들어가기에는 아주 적은 몇 사람일 터인데, 솔직히 말하여 영어공부를 했다 하는 것이 옳아요."(p.38~39)

섬으로 시집을 간 푸건이가 병에 걸려 엄마가 보고싶다고 울고 있다는 소식에 야무네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간다.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한번 들여다 볼 수도 없던 딸이기에 마음이 짠하다. 야무네는 뒷일이야 어찌 되건 푸건이를 데려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먹을 것 없고 가족들 살기도 빠뜻하지만 그래도 딸을 데리고 가고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푸건이가 끝내 안가겠다고 하여 두고 오는데, 사위마저 병이 들고 결국 푸건이를 데려오게 된다. 푸건이네 시집에서는 아들이 병든 것조차 사람이 잘못 들어온 탓이라 하며 병에 들어 다죽게된 며느리를 데려가라 한다. 사람 사는 것이 참말로 냉정하다. 흔히 일일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이야기기도 한데.. 집안에 새 사람이 들어와서 집안이 펴면 자기들 잘나서 그렇고 집안에 변고라도 생기면 다 밖에서 들어온 새 사람 탓을 한다. 지독한 가족중심 이기주의다. 결국 그 가족이란 것이 밖에서 들어온 새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아니던다.

토지를 읽다보면 '시대적'인 특성이긴 하겠지만, (요즘도 아예 없어지지 않은) '결혼'을 했는가 안했는가, 누구와 혼인을 하는가, 못하는가, 좋아하는 이를 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싶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인물이 거의 없는데도 왜 다들 그렇게 결혼을 하라고 하라고 하는걸까?

임이네는 토지 10권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악착같이 모은 돈은 호강하며 사용하지도 못할 돈이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도 악을 쓰며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임이네.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임이네를 멀리하지만 그런 악바리같은 심성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웃으면서 살 수 있었을까? 결국 병원에서도 손쓸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임이네에게조차 나는 연민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부여잡고 있는 끈이 썩은 동아줄이라면 진작 놓아야했지 않나...

홍이는 좋아하는 장이가 아니라 보연과 결혼한다. 어찌 된 것이 좋아하는 사람과 자연스레 이어져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없다. 다들 얽히고 엮이다 보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평사리에서 오광대놀음 하던 날 의병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고 나오면서 홍이는 사는 방법을 또 하나 배운다. 보연과의 결혼생활도 나쁠 것 없음에도 장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런가하면 서희는 두 아들의 성장과정에서 길상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차갑고 냉정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켜내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 말 때문에 때린 거는 아니고요. 니 아부지는 종이라 했더니."

"그랬었구나. 말한 대로 들려주어 고마워."

서희의 음성은 잠긴 물처럼 조용했다.

"순철아."

"야."

"그랬다면 환국이 잘못한 것은 없구나. 네 잘못이야. 왜냐하면 환국이아버님은 종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라 위해 몸 바친 분이었단다."

박의사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강인한 억제, 마지막의 말은 모든 것을 건 모성의 승리였다.

강가까지 온 서희는,

"여보, 당신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 확실히 알겠소. 하지만 장하지 않아요. 당신 아들 환국이가?"

찬 바람 속에 서서 서희는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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