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라진 세계에서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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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야카리노 작가의 그림책을 몇 권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그림책이 [폭풍이 지나가고]였다. [나는 이야기입니다]도 꽤 인상깊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의 그림책을 떠올려보면 댄 야카리노 작품의 성향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지식과 정보, 감정과 생활사 등 모든 것을 후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면서 보관이나 효율성에서도 뛰어난 책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자주 들려온다. 플로피디스크나 테이프(비디오테이프 포함) 등 자료가 남아 있어도 재생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읽기'라는 개념을 종이로 된 책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표현된 내용 읽기까지로도 넓혀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문자로 표현된 것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또한 제대로 읽지 못하면 정보의 왜곡이나 오류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사고력에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디지털 자료들이 하이퍼링크로 이어져 자료를 찾거나 활용하기에 편리해졌다고는 하지만, 깊이 있는 탐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누군가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나의 정보를 이용하여 (누군가는) 이익을 얻기도 한다.  


이 그림책은 마치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 듯하지만, 어쩌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 작은 기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이것은 휴대폰이나 (크기가 작아진) AI 비서일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굳이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손에 든 그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펼치면, 모두 똑같이 생겼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손 안에 든 기계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아니나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바뀐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을 하는 것.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커다란 눈이 우리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상황. 하품을 하거나 자고 있거나 또는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눈은 우리가 가야할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읽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까지도 모두 커다란 눈이 정해준다. 이 눈은 아마도 AI 인공지능이 아닐까싶다. 내가 선택하거나 고르거나 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나의 뇌와 몸은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챗GPT를 비롯하여 AI,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 그림책의 내용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의 생활 중 많은 부분이 그림책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누군가는 거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 이 그림책에서는 빅스이다. 커다란 눈이 데려다주는 곳, 대신 정해주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이 재미가 없다. 왜일까? 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모든 것이 재미가 없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빅스는 세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찾아낸다. 원래부터 커다란 눈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낸 다양한 삶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직관적으로 그림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어린이가 읽어도 무방하다. 그림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하고 토론하기에는 청소년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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