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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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p.7)

전직 빨치산이었던 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짜 농부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였던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문자 농사'라 구박을 받으면서도 농사를 '글'로 배운다. 그러니 번번이 농사는 망했다. 아버지는 감옥살이를 마치고 현실로 복귀했지만 시도때도 없이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어떻게 치룰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든다. 장례식장 사장인 황사장은 '사촌오빠의 동창이자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시자고 극구 주장한 아버지의 정치적 동료인 박동식 씨의,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피를 나눈 것과 진배없는 절친한 동생'이다. 어제 처음 만난 '박동식'씨는 자기가 내 아버지를 삼촌으로 모셨으니 '나'도 자기를 오빠로 모셔야 한다고 한다. 아버지와 연관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거나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나'의 아버지 '고상욱'씨에 대해 하나둘 알아간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죽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치루는 동안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가족 또는 친척들도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을 것이다. 그 아품의 역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하나 둘 밝혀진다. 아버지와 평생 원수처럼 살았던 작은아버지에게도 그 못지 않은 아픔이 있었다. 장례식장에 끝까지 안 올 줄 알았지만, 혈육의 죽음 앞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투리가 참 정겨웠다. 그래 사투리는 이렇게 써야 제맛이지. 표준어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감정들이 사투리에 묻혀 살살 풀어진다. 이야기는 3일 간의 장례식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문득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울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그리 애틋한 정도 없었고, 평소 공감하지 못하는 성격상 아버지의 장례였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장례식장을 찾아 온 친척이, 지인이 대성통곡을 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저들과 아버지 사이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했다. 작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한다. 나도 그랬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이념이,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현실'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내 삶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같다. 나의 대학 시절만 해도 이런 저런 노선과 운동으로 꽤나 시끌시끌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우리는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삶으로서 부딪치지 않았으니 그것이 껍데기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한편으로는 무거운데 한편으로는 즐겁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읽나보다. 단숨에 읽을만큼 속도가 붙는 책이다. 너무 어린 친구들은 오히려 이해 되지 않는 내용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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