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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ㅣ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드라마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는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 머물며 방대한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한다.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하니 가히 대하소설급이다 싶다.
주인공인 선자가 태어난 곳은 부산 영도이다. 작가는 어떻게 해서 첫 무대를 영도로 잡았을까? 내가 20대일 때, 자갈치와 영도를 왔다갔다 하는 배가 있었다. 선자가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러 부산에 나올 때, 이삭이 영도로 들어올 때,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배를 탔을까?
책을 읽는 첫머리에서 내가 잘 아는 곳의 지명을 보고, 내가 쓰는 사투리 억양을 떠올리며 읽기 시작해서인지(음...약간 사투리에서 삐걱대긴 했지만) 쉽사리 그 시절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훈이는(선자의 아버지다) 조선어와 일본어를 배웠고, 글을 익히고 셈을 할 수 있을만큼 배웠다. 훈이는 양진과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지만 모두 죽고 선자만 살아남았다. 훈이는 선자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다. 그렇지만 선자가 열 세살 되던 해에 훈이는 결핵으로 죽었다.
사랑을 받고 소중하게 자란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인 듯하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양진과 선자는 하숙을 치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하숙인을 대하는 양진과 선자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선하고 착한 사람인지, 사랑 받고 살고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 자존감 또한 충만하지 않았겠나 싶다.
얼굴이 예쁘고 미인이 아닐지라도 사람의 선한 성품은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이들이 모이는 게 아니겠나. 하숙인들이 그랬고, 식모들이 그랬다. 그런 선자에게 마음을 준 고한수도, 선자와 선자의 아이까지도 감싸안은 이삭도,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고한수는 일본에 처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선자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인 듯하였다. 나는 1권을 다 읽은 후에 이 책에는 빌런 같은 악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악덕 일본인 경찰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자기 일을 주어진대로 하는 경찰이 나올 뿐이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일도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이들이 중심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참 담담하게 써내려갔구나. 어쩌면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녀의 경험이 이 시대의 아픔을 악인 대 선인의 구조로 끌고 가지 않은듯도 하였다.
선자가 고한수로 인해 임신을 하고, 이삭과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삶도 있을 수 있구나 하였다. 이삭이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 있다 돌아온 뒤 죽고 난 후 요셉과 경희, 그리고 선자와 노아, 모자수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일본에서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던 동포들의 흔적을 찾는다. 대하소설(^^)답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그 시절의 아픔을 돌아보았다.
나라를 잃은 국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 자신을 믿어야 했고 사상이나 종교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살아내는 것. 요즘 나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국민을 보호하고 힘이 되어줘야 할 나라가 없다고 여겨지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잠깐이나마 '자부심'으로 충만해졌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진다.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는 아마도 2편에서 이어지나보다. 그 시절을 살아가야 했던 젊은 세대의 아픔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로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