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1주년 스페셜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도서관이라는 낱말만 보면 습관적으로 책이든 잡지든 손에 잡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이다. 보통은 비문학이기 마련이지만, 소설임에도 손에 든 이뉴는 '죽기 바로 전에 열린다는 그 마법의 도서관'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모르는 저자의 책일 경우에는 저자 소개를 읽지 않는다.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는 편인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소개글을 읽는다. 저자인 매트 헤이그는 20대 초에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생을 마감하려했었다고 한다. 파트너와 가족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였고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캐릭터인 노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의 시작과 끝에는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 해주었던 엘름 부인(사서)과 도서관이 있었다. 사람들은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프거나 할 때 그런 마음을 다독거려줄 친구나 어떤 장소가 있다. 노라에게는 그곳이 '도서관'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곳을 찾아야 한다면 아마도 '도서관'을 찾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도 그럴까? 학교 도서관이든 마을 도서관이든 아이들에게는 그곳이 마음을 편히 하고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죽기로 결심하기 19년 전, 노라 시드는 베드퍼드에 있는 헤이즐딘 스쿨의 아늑하고 작은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9)


이 책의 첫 문장이다. 도서관 사서인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체스를 두는 중이다. "뭐든 할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어. 덜 춥고 덜 축축한 곳에서 말이야." 라며 노라를 격려한다. 노라의 엄마는 노라를 '바로잡아야 할 술시'처럼 대했지만 엘름부인은 그렇지 않았다. "너처럼 똑똑한 아이는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죽기로 결심하기 스물일곱 시간 전 노라는 애쉬가 찾아왔고, 애쉬는 그녀의 반려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노라는 외로웠고, 슬픔은 익숙했다. 복용 중인 항우울제는 눈물도 나지 않게 했다. 자신의 반려묘가 죽었는데, 노라는 동정과 절망보다.... 고통 없이 미동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꼈다.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등 요즘은 육체의 고통만큼이나 정신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황장애'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 특히 그러하다. 산후우울증은 대표적인 우울증의 하나인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기를 거쳐오며 아슬아슬하게 넘겼지만,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두드러진 요즘 산전 산후의 갭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그럴 때 느끼게 되는 '나'라는 사람의 사회적 가치, 떨어진 자존감, 무쓸모....

노라는 인생의 작은 고비고비마다 그 고비를 이겨 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아왔다. 항우울제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상태에서 가족(특히 오빠)과의 유대도, 직장에서의 평범한 삶도, 친구와의 연결도 모든 것이 다 엉망이고 제대로 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그런데 노라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에서 자정의 도서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들어가게 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는 인생의 조력자를 만나, 후회했던 선택을 바꿔 다시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나라면 어떤 후회의 삶을 바꿔보고 싶을까?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매순간을 산다. 분명 내가 가지 않은 길에는 다른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길이 지금 내가 선택한 길보다 나은 길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노라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자신이 가보지 않은 선택을 경험하게 된다. 죽고 싶었던 노라가 그런 경험을 통해 점점 변화하게 된다. 노라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이웃집 배너지 씨를 대신해서 약을 타다주는 사소한 목적도, 노숙자에게 줄 돈도 없었다. 궁지에 몰리거나 외로움에 사무칠 때 왜 세상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밀어버릴까? 노라는 평생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가 둔 모든 수는 실수였고,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으며, 매일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졌다. 수영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중 어느 것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 주인'이라는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혹은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피아노 레슨 선생님'도. 혹은 '대화가 가능한 인간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39

"삶과 죽음 사이에는 도서관이 있단다." 그녀가 말했다. "그 도서관에는 서가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거기 꽂힌 책에는 네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지.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인거야....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49


그러고보면, 진짜 도서관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수많은 무한대의 삶을 담고 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내가 가 보지 않은 그길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경험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도서관을 무대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그것을 선택했고, 한편에는 '후회'를 남기고 살고 있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소로가 <월든>에서 한 말이다. 

예전에 밤이 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면 노라는 그 이유가 고독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고독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분주한 도시에서는 외로운 마음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마음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한 자연(혹은 소로의 표현대로 ㅎ자면 '야생이라는 강장재') 안에서는 고독이 다른 성격을 띤다. 고독 안에서 자체적으로 연결이 이뤄진다. 그녀와 세상이 연결되고, 그녀와 그녀 자신이 연결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185


노라는 빙하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북극에서 곰을 만나 정말로 돌가고 싶을 때 돌아가지 못했다. 생존본능은 노라로 하여금 정신없이 냄비와 국자를 두들기게 하였다. 노라는 죽음의 순간 자기가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 앞에 서면 삶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노라 앞에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북극에서의 경험은 노라로 하여금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을 끌어내었다. 삶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곳에서 노라는 노라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위고를 만난다. 

노라는 자신을 위한 완벽한 삶을 찾아 새로운 삶을 계속 경험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노라와 같은 고민에 빠져든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인적이 적은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만약 숲에서 길이 두 갈래 이상으로 갈라졌다면 어떻게 될까? 나무보다 길이 더 많다면?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끝없이 많다면? 로버트 프로스트라면 그럴 때 어떻게 했을까?"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최상의 결과는 '여러 대안 중에서 현명한 선택을 내린 결과'다. 그런데 지금 노라는 이렇게 여러 대안을 조금씩 맛보는 특권을 누리는 처지에 있다. 이는 지혜로 가는 지름길이며 아마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할 것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277~278


그녀가 삶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러서 이제 나쁜 경험이 있으면 좋은 경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듯 했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p.308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확실하고 분명했던 데에 비해 최근에는 가벼운 연결고리를 더 많이 원하는 것 같다. 내 삶을 다른 사람(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공유하면서도 나의 내면은 드러내보이지 않으며 어느 누구와도 종속되지 않으려는 상태.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정작 그들의 고민과 생각에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상태 말이다. 배너지 씨가 요양병원보다 집에서 살기를 원했던 이유도 그것이었고, 노라가 병원에 있는 엘름부인을 찾아가 체스를 두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노라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비슷한 나의 도서관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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