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김예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그리고 천원짜리 변호사를 보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주변에 법대 다니던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에 법조계로 나간 이는 없었다. (아마 잘 된 분들은 나와의 연결고리가 없었을지도) 그래서 내가 접할 수 있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tv나 영화를 통해서였다. 꽤나 잘나가는 직업이라 여긴 것은 아마도 그런 매체들의 영향이 크다. 반대편에 서 있는 '검사'들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선망보다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김예원 변호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시각장애인이고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인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공익변호사라는 소개글을 읽고서야 이 책을 좀더 진실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82년생 김지영' 연극을 보면서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었다. 그것은 바로 그 김지영에 내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김예원 변호사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아닌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를 피해자의 옆에서 대신 내줄 때, 같은 곳을 함께 째려봐줄 때, 사건을 마주한 한 사람이 조금씩 본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 큰 행복이다. 이 책은 그 연대의 여정에서 썼다. (p.11)

사람들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공감한다. 그래도 아직은 그런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가끔은 타인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피해자'가 당할 만하다거나 '그런 빌미를 줬다'고 말한다.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려고 해도 철통같이 막아낸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해서는 안된다. 전부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하나 둘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까. 

한번은 인권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각자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인권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공통의 관심사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권'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의 삶이 '인권 친화적'일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터였는데, 그날도 사건이 하나 있었다.(p.60)

세상은 느리게 변한다.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다. 텀블러를 끝내 반납하지 않았던 그가 살아가며 '절도'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약간씩 불편해지기를 바란다. 스스로 돌이켜서 변화하기 어려운 우리네 인생에 때로는 그런 작은 파동들이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p.62)

나도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비인권'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 한둘때문에 모두를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그만큼 세상에는 자신도 모르게 비인권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고, 우리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이 안 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과 말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날갯짓이 될 거라 생각하고 '의식적'으로라도 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장애인은 소수일 수는 있지만 '약자'로 불릴 이유는 없다. 사람의 얼굴이 제각기 다르듯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약자'라는 말로 납작하게 표현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와줘야 하는'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고 배우고 싶은' 한 사람으로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실천해보면 어떨까. (p.86)

중학교 때 친구가 장애가 있어서 늘 어머니와 함께 등교를 했다. 그 친구는 어느 누구보다 밝았고, 활기 있었고, 건강한 미소를 가진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약자'인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은 너무도 부족하다. 어쩌면 장애인과 여성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고 본다. 장애인이면서 여성인 경우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가차 없이 드러냈다. 아니, 원래부터 드러나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곳이 너도 나도 죽겠으니 드디어 들여다보이는 상황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사회의 약한 고리 중에 아동학대문제가 특히 더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아동은 스스로 '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p.118)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냈다는 데 공감한다. 그나마 혼자 있어도 걱정이 별로 안 되는 청소년 자녀를 둔 덕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어린 자녀를 키우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많은 걱정이 되었었다. 누군가가 보호하고 보살펴야 하는 아이들이 '팬데믹' 앞에서 방치되었고 고립되었다. 아동에 대한 걱정 뒤에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또 한번 느낀다. 고립되고 방치된 아동을 위해 국가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손가락은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장애인, 아동,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우리 사회가 좀더 많이 하고 많이 들어주길 바란다.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형을 깎아주지 말고 엄하게 처벌하자는 말에는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만, "술 취한 사람은 위험하니 술 깰 때까지 가둬놓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왜 통계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독 장애인에게만 분리와 배제를 말하는가. 등록 장애인의 수가 전체 인구의 5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절대적인 소수자라서 겪어야 하는 오해나 해프닝일까?(p.158)

우리나라가 유독 술에 관대한 나라라고 한다. 술 좋아하는 나랏님이 술 얘기만 하는 걸 봐도 그렇다. 술에 취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인사불성이 되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사람이 뭔 죄냐, 술이 죄지.'라는 말을 한다. 웃기는 말이다. 술이 뭔 죄냐, 그걸 마시고 정신 못차린 사람이 문제지. 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까? 무엇을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다. 뚜렷한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각자도생 아비규환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별일 없이 살아가려면 '약자'로 취급받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거나 '약자'라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괜찮은 척을 해야 한다. 더러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 도저히 괜찮은 척을 할 수 없을 상황이 닥쳐도 마른 걸레에 물 짜내듯 스스로를 비틀어 견뎌야 하는 것이다.(p.183)

차별과 혐오. 요 며칠, 온갖 혐오가 넘쳐나는 모습을 또 보았다. 국가가 국가의 구실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약자와 비정상'은 '국민'이다. 이 책은 장애인과 아동의 인권을 서술하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여성'을 보았고, '대한민국 국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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