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주문 -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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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해 말하지않으면 세상은 그것을 없는 것으로 친다. (p.18)


대학 다닐 때(벌써 3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중간/기말고사를 치면서 교수님들이 남학생들에게 후한 성적을 줬다. 그때, 교수님들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점수를 줘도 여학생들이 성적이 더 좋지 않냐. 얘들은 졸업하면 취직하고 결혼해야하니까 너희가 이해해라."라고. 


저건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들은 수많은 말들 중 하나일 뿐이다. 결혼한다는 말을 했을 때, 지도교수가 했던 말도 생각난다. "이제 공부는 계속 안할거야? 일도 못하겠지?" 어쩌면,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왜 저런 말은 여자만 들어야했을까? 남자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니 학점도 잘 줘야 하고,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하던 일도 하던 공부도 손을 놓아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의 여성에 대한 차별에 눈떠야 하냐고? 그것은 도무지 진단명이 나오지 않던, 수많은 여성들의 승진누락, 조기퇴직, 낮은 임금, 쉬운 해고 등의 문제들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p.18)


나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었다. 결혼 전까지 나름 전문직을 갖고 있었고, 잘한다고 인정도 받았지만, 결혼과 임신, 출산 이후 나는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여자가 돈 벌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적게 벌어도 남자가 벌어야한다"는 말도 들었다. 나만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일까?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서 살았다. 그러다 아이라도 낳고 나면, 그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 아이가 학습능력이 좀 뒤처지기라도 하면, 학교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그건 다 엄마탓이 되었다. 


성공한 여자의 자녀에게 진학 등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성공한 여자는 여자로서도 심판받고 어머니로서도 심판, 비난받는다. 본인도 못 견뎌 자녀를 서포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그럼, 성공한 남자의 자녀에게 같은 문제가 생기면? 그의 아내가 비난받고 그는 이해받는다. 그의 아내가 일하는 여성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p.34)


요즘은 대부분이 맞벌이를 한다. 똑같이 출근을 하고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서야 자리에 앉지만, '누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아서 주는 밥 먹고, 쉰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회사에서 조퇴를 하는 사람도 엄마고, 학부모 상담이 필요할 때 연차를 쓰는 것도 엄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은 아빠들이 많다(정말 많냐고. 아직도 20여 명의 학부모가 모이면 19명이 엄마고 1명이 아빠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그 1명의 아빠조차 없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라도 일으키면 '엄마는 무엇을 했냐'고 한다. 왜 아빠에게는 묻지 않을까? 혼자 키우는 아이도 아닌데. 


출산 후 그만 둔 일을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다시 시작했다. 출산 전 '전문직'이었던 나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직원이 되었다. 경력 단절은 나의 커리어를 0으로 되돌려놓았다.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아이는 아직 어렸고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 지금은 다시 정규직으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지만, 정년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항상 걱정한다. 


좋은 기회는 여자에게 오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이런 '기분'을 느껴왔는데, 실제로도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승승장구할 때는 여성을 배척하다가, 위기에 처하면 여성을 리더로 내세우는 조직은 정치권에서부터 전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IT기업까지 비일비재하다. (p.101~102)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여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 온갖 욕지기를 다 듣는 경우도 흔하다. 여성들에게는 유리천장도 있고 유리절벽도 있지만 남성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던가? 차별이란 게 뭔지 제대로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역차별' 운운한다. 여성을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존재로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가벼운 에세이였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한 주제들이었다. 남성들이 읽고 현실에 눈뜨게 할 필요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여성들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네트워크도 필요하고, 위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밀어주고, 밑에서 받쳐줄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도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 '나 혼자'라면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함께'라면 바꿀 수 있다. 나 역시 구구절절 남성과 여성을 구분지었지만, 앞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짓지 않고 '인간' 그 자체로 보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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