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와 생맥주 - 최민석의 여행지 창간호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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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확 눈길을 끈다. 기차와 생맥주라... 거기다 여행지 창간호라는...


작가는 이 책에 여행지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로 여행지(旅行誌)는 아니다. 여행을 소재로 쓴 에세이라고 해야할까? 



작가는 기차로 하는 여행을 좋아하고, 공항에서 마시는 생맥주를 즐긴다. 나도 비슷한 부류다. (기껏해야 한국 안에서 돌아다니느라) 비행기 타고 다닐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유혹을 느낀다. ktx보다 비행기표가 더 쌀 때. 그렇지만 보통은 기차를 이용한다. 기차역까지 가는 길도 짧고,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3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못하니 당연히 자동차로 이동하지는 않기에 오로지 대중교통에 의지해 움직인다. 그래서 여행을 생각하면, '기차'를 먼저 떠올린다. 



첫 이야기로 미국 기차 여행이 나온다. 미국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모바일 예매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의 고충을 풀어놓는다. 어렵사리 탄 기차에서 미국이 계급사회라는 것을 느낀다. 다양한 인종과 이방인들이 모여드는 미국이라 더 자주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외국 여행을 따라가지만, 마음 속으로는 계속 나의 국내여행을 따라간다. 사실 내가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더라면 저자와 공감하거나 때로는 나만의 감상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여행 경험은 적어서 국내 여행으로 대체할 수밖에. 하하. 



오히려 어떻게 보면 내가 아는 '외국'의 모습이 없기에 저자가 풀어놓는 여행기에 푹 빠져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쿨한 듯 하다가도 때로는 쪼잔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곳을 다녀온 듯하다.



태국어로 안녕하세요는 '싸와디캅'과 '싸와디카'다. 둘 다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는데, 이 말을 내뱉으면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마치 경쟁적으로 입을 할짝 벌리며 환대하는 것처럼. 언어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만나 나누는 인사가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꽤 중요한 것 같다.



"작가는 아무리 성공해도 오기가 좀 있어야 글을 계속 쓸 수 있다."(p.73) 는 작가는 겨울에 이런 각오를 다지기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작가의 아내는 '추위'를 피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때론 온전히 타인의 취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때로는 투덜대기도 하고, 때로는 참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럴 때 항상 내 세계는 조금씩 넓어졌다."(p.77)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은 서로의 차이를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다만 거꾸로 보자면, 그렇게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대다 큰 싸움이 나고 헤어질 수도. 



"우리는 일상에 차이를 주고 싶어 떠난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 기대보다 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언제나 우리가 기댈 안정적인 무언가를 확보하길 원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글로벌 체인의 커피나 햄버거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호텔 조식일 수 있다." (p.95) 나도 호텔에 묵을 때는 그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이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 낯선 곳에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돌아다니다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침에 일어나 준비된 조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사실 아침부터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파는 레스토랑이나 식당을 찾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조식을 반드시 추가하는 편이다. 작가는 이 글 말미에 객실료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서 먹는다고 했지만... 조식은 선택 가능하다. 그러니 굳이 조식을 선택했다는 것은 객실료에 포함되어서라고는 할 수 없을 듯... ^^



이 책의 후반부에는 <피치 바이 매거진>의 청탁을 받고 썼다는 픽세이(소설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에시이)가 실려있다. 사건명으로 시작하는 이 글들은 소설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글들이다. 



여행을 다니는 일이 나에게는 일상의 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이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돈도 버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나의 '여가'가 아니라 '일'이 될 때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갔던 그 많은 장소들과 경험이 부러웠지만, 앞으로 경험하면 될 일이다. 유쾌한 유머가 있어서 더 즐겁게 읽은 책이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생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작가처럼, 나도 오늘은 이 책을 덮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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