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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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하면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앨리스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빛을 찾아요. 그렇죠? 빛을 찾으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 믿나 봐요."

내가 말했다.

"인생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압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확실한 해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브렌던 씨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죠. 빛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달라요. 우리와는 달리 확신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두려워요."

"그 사람들의 확신이 앨리스 씨가 인생에서 찾고 있는 해답과는 달라서요?"

"그들이 찾은 해답은 일방적이죠.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배웠어요. 자기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죠." p.315~316


브렌던 씨와 앨리스 씨는 우버 기사와 손님으로 만난다. '우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소설 속 브렌던 씨를 통해 우버 기사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우버' 기사로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그만큼 그 직업 외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객센터로 들어가는 고객의 항의나 클레임에 대응해야 한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으로 보자면, 근로자인 우버 기사들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시스템이다. 고객인 내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에 대한 권리라고 하겠지만, 세상에는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얼마전 서울에서 택시를 타다가 승차거부를 몇 번 당하고 보니 대중교통으로서의 택시와 서비스에 대해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버스와 달리 고객과 가까운 곳에서 대면해야 하는 택시의 특성상 대민 서비스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브렌던 씨는 앨리스 씨를 태우고 병원으로 데려다 준 일을 계기로 '임신중절'이라는 이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한다. 브렌던 씨의 아내 아그네스카는 임신중절반대론자이다. 첫째 아들 카론을 잃은 뒤 삶의 의미를 '임신중절반대'운동을 통해 찾고 있다. 딸인 클라라는 사회복지사이며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쉼터에서 일한다. 한 가족이지만 각자 자기만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앨리스 씨는 진보 성향의 남편과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딸, 그리고 본인은 '임신중절' 여성을 보호하고 상담하는 봉사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앨리스 씨의 가족 또한 각각의 성향이 다르다. 그런가하면 브렌던 씨의 친구이자 사제인 토더 신부, <엔젤스 어시스트>에서 일하는 테레사, <앤젤스 어시스트>를 후원하는 자산가 켈러허 등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임신중절을 찬성하는 편이다. 물론 애초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범죄의 대상이 되었을 때나,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여성, 아니 인간'으로서의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 때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살아있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혹은 비참한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고 신념이 다르기 때문에 그 또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지독한 가난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넉넉한 경제적 사정과 잘 나가는 직업, 사회적 평판이 높은 사람이지만 가정에서는 불행한 사람도 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대할 때, 나의 판단이 가장 올바르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신념에 갇혀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내가 임신중절을 찬선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앨리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앨리스는 임신중절'을 무조건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즉, 내가 어리고 경제적 여유가 없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고, 상황이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기에 나는 앨리스의 일이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테레사와 토더신부처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남을 해치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일이 아무리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지지하기 어렵다. 즉, 자신의 신념이 오히려 '폭력'이 되어 사람을 괴롭히면서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소설에서는 임신중절이 소재지만, 우리의 일상을 보자면, 극우 유튜버와 극우보수주의자들이 퇴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언어폭력과 시각적 테러를 감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지지받을 수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슈를 소설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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