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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평점 :
[솔로몬의 반지]가 대체 뭐야? 처음에 솔로몬의 반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하이에나는 우편배달부](비투스 B 드뢰셔)를 통해서였다. 솔로몬왕은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어떤 걸 들려줄까? 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첫머리에는 초판2쇄 머리말이 있는데, 이걸 읽어보니 콘라트 로렌츠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초판에서 미처 챙겨보지 못한 오류와 실수를 콕콕 집어내어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데, 그 머리말은, 동물학자(비교행동학자)의 학자로서의 모습보다 우리 이웃에 사는 친근한 아저씨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아하, 이 책도 역시 편안하게 읽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콘라트 로렌츠는 [이 책이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동물을 다룬 책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것](p.9)이라는 그의 말은 그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물을 집적 기르거나 연구해보지 않은 사람의 상상에 의해 쓰여진 책이, 일반독자들, 혹은 어설픈 동물애호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엉터리 정보를 남발하고 있는가. 물론 저자는 문학적 형상화에 대해서도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어 있다](p.10) 는 말로 지적한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게 1949년 여름이라 하니, 한참 늦게서야 번역된 셈인데, 이런 류의 책(뒤늦게 번역된 책)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다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얼마전 읽었던 [안녕하세요 아그네스선생님](커크 패드릭)때도 그랬다.
저자는 수족관을 꾸밀 때에도 모래를 깔고 수초 몇개를 넣은 다음, 수초가 자라기 시작하면 물고기 몇마리를 넣어주라고 한다. 그때 주의할 점은 너무 많은 물고기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정한 숫자의 물고기가 있다면, 수족관은 다른 장치 없이도 생명이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노련한 수족관 애호가들은 인공적인 공기주입기를 통해 공기를 넣음으로써 이 위험에 대처한다. 그러나 이 기술적인 보조수단은 수족관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수족관의 물 속 세계는 스스로 유지되도록 되어 있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수조의 앞면 유리를 닦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생물학적 보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p.29)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수족관은 <우리>다. -중략- 수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특정 동물의 사육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p.32)
저자는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동물을 집에서 기르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거나 함께 살기는 하되, 그 동물의 생활환경 혹은 기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부합하는 동물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함께 사는 동물도, 그 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동물을 사육하려는 욕망은 문화를 갖게 된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인 대자연을 동경하는 데서 온 것이다. 모든 동물은 자연의 일부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자연의 대표로서 당신의 집에 같이 살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p.164)
결국 동물을 기르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한가지 방법이기는 하되, 어떻게 기르는 것이 동물을 더욱 사랑하는 방법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반지가 없는 우리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저자와 같은 사람을 통해 연구되어진 결과를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그런 우리의 믿음을 배반하는 상상으로 쓰여진 동물행동에 대한 책과 지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이미지는, 이미 우리 머리 속에서 하나의 정답으로 인식되어 있다. 동물은 인간의 하위개념으로, 인간의 나쁜 행동은 동물적인 행동으로 정의내려버린다. 그러나, 동물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고 연구한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동물적인 폭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육식동물에게서는 강력한 폭력성을 초식동물 혹은 조류(특히 인간의 주위에서 사는)에게서는 비폭력성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시각인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비인간성은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지 그것이 동물적인 행동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나름대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기를 만드는 것과 우리의 파멸을 막아 줄 책임감이나 자제력을 형성하는 것,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용이할까?] (p.221)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