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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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의점에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처음에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생겼을 때, 동네 구멍가게들이 다 죽는다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환하게 불을 밝힌 편의점,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의점, 동네 구멍가게들보다 많은 물건들이 아무래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그러다보니 골목골목에 하나씩 있던 구멍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편의점 건너 편의점이 이어질 정도로 많아졌다.

작년에 이사를 한 후에야, 근처 편의점을 이용하게 되었다. 원체 군것질거리나 야식을 먹지 않기에 그다지 갈 일이 없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동네 구멍가게를 떠올렸다. 동네 사정 다 아는 동네 주민이 운영하였기에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묻고,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물건을 척척 내주던 가게들말이다. '독고'씨가 야간 알바를 하게 되면서, 이 편의점은 불편한 편의점일지언정 동네사랑방 같은 느낌의 편의점으로 바뀐듯하다.

편의점이라는 이름은 '편리함'을 포함하고 있다. 24시간 문을 열 뿐만 아니라 웬만한 물건들은 다 있어서일 터이다. 그런데 이 편의점은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한다.어떤 사연이 있는 편의점일까?

"버스를 타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 염 여사는 편의점 직원들을 떠올렸다. 지지리도 말 안듣는 아들놈과 오지게도 잘난 딸년보다 요즘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가족 같고 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딸은 또 직원들을 가족같이 대하면 악덕 업주니 옳지 않다느니 따지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랴. 직원들에게 날 가족같이 생각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원들을 가족같이 여겨 무리한 업무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염 여사는 지금 가까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편의점 직원들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p.31)

염 여사는 서울역에서 자신의 파우치를 지켜준 노숙자 '독고'씨를 본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데리고 와서 도시락을 준다. 언제든지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염 여사의 선행은 쉽게 할 수 있는 선행이 아니다. 편의점에 노숙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결코 가게 운영에도 도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독고'씨에게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까지 주게 된다. 그녀가 편의점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편의점을 운영하지만, 그것을 갖고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근처에 다른 편의점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때도 무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오랜 시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래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 저 아래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런 그녀 덕분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아간다.

이 편의점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바를 하고 있는 시현이 있고, 동네에서 20년을 알아온 친구이자 교회 성도인 오여사가 있다. 그리고, 종종 담배를 사 가던 동네 아저씨 성필이 야간 알바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염 여사는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이 편의점을 떠나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족 같다는 느낌이라고.

"평생 사장이나 자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염 여사가 편의점 경영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이 사업장이 자기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걸린 문제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였다."(p.33)

염 여사의파우치를 찾아주고, 염 여사가 곤란에 처했을 때 도와 준 인연 덕인지 '독고'씨는 성필 씨가 떠난 야간 알바 자리에 들어간다. '독고'씨는 시현 씨로부터 편의점의 일을 배운다. '독고'씨의 과거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지만, 편의점 일을 배우는 속도나 시현 씨에게 유튜브 업로드를 제안하는 등 아마도 잘 나가던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게 된다. 시현 씨는 '독고'씨의 조언대로 유튜브를 업로드하면서 다른 편의점에 스카웃되어 가게 된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나쁜 사람이 없다. '독고'씨는 어눌한 말투지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손님들과 소통을 해 나간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며 무시하지만 결국은 '독고'씨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은 손님들이다. '독고'씨가 일을 한 후로 편의점에는 동네 할머니들도 드나들고 매상도 조금씩 오른다. 편의점의 변화는 조금씩 조금씩 일어난다.

'독고'씨가 손님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도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찾아가는 듯하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 온 시간들이 그에겐 어떤 시간이었을까? 짐작컨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과거와 단절된 채 노숙자로 살아가게 한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이 편의점을 들렀다 가는 많은 손님들을 통해 나 역시 독자로서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그들의 생활이 나의 어느 일부인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p.266)

소설 속의 인물들을 보면, 혼자 애끓이며 고민할 때는 풀리지 않던 것들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문제는 혼자 고민한다고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무수한 긍정 에너지가 있다. 요즘 본의 아니게 사회생활이 제한되고,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관계와 소통'이 더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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