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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구로카와 유지 지음,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당연하게도 최근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2022년에 발매되었지만, 이 책은 2002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책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하기까지의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지만, 최근 2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국제 정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즉,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최근의 전쟁 때문이고 과거와 달리 20년이라는 세월은 국제정세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는 시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아마도 그런 아쉬움을 같이 느끼지 않을까?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짚어보는데는 꽤 읽을만한 책이었다. 일본인 작가가 우크라이나와 일본을 엮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만 좀 뛰어넘으면 되겠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스키타이인의 건국설로부터 시작한다. 스키타이인은 유목생활을 했으며 고대에서 유목의 형태를 거의 최초로 확립한 민족이다. 스키타이인에 대해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배경과 부합한다. 다만 스키타이의 땅에 사는 이들이 모두 유목민이엇던 것은 아니다. 스키타이는 문자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농경 스키타이가 슬라브의 선조라는 학설도 있다. 또 스키타이인은 용맹함을 숭상하고 능란한 기마술이 특징인 매우 뛰어난 전사였다.
2장부터 키예프 루스 공국이 등장한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중세 유럽에서 찬란하게 및나는 대국이었다. 루스라는 단어에서 '러시아'가 파생되어 '키예프를 수도로 삼는 루스'라는 뜻에서 키예프 루스로 부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역사를 러시아역사에서만 다루었지만 러시아(소련)는 대국이고, 우크라이나는 독립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후, 우크라이나의 땅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영토가 됐고 나라 자체가 소멸해서 계승자가 없었다. 반면에 키예프 루스 공국을 구성하던 모스크바 공국은 단절되지 아노고 존속했기 때문에 키예프 공국의 문화를 계승하여 러시아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의 입장이다.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는 모스크바를 포함한 당시 키예프 공국의 동북 지방은 민족, 언어가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야 슬라브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모스크바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비슬라브 부족의 연합체이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후계자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 전제 중앙집권체제였던 러시아/소련과 키예프 루스 공국의 체제는 전혀 다르기때문에 별개의 국가이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치, 사회, 문화는 키예프가 파괴된 이후에도 1세기에 걸쳐 서우크라이나 지역의 할리치나, 볼린 공국으로 계승됐다. 그래서 양 국가의 주장은 배치된다. (p.41~47 요약)
이 책에는 12세기 초에 편찬된 『원초연대기』의 내용을 많이 소개한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건국, 번영,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최초의 역사서이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동슬라브의 거주지역에 건설됐는데, 그 촉매 역할을 한 것이 하자르인과 북유럽의 바랴그인(바이킹)이다. 하자르는 세계사에 세 가지 흔적을 남겼는데, 유대교를 국가의 종교로 채택한 점, 동쪽에서 유럽으로 침입하려는 이슬람을 막은 점, 통상무역을 보호하고 전쟁보다는 외교를 중시하는 국가가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동슬라브인의 땅에 국가를 수립한 것은 바랴그인이었다. 그들에 의해 '루스'라는 나라의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키예프 루스 공국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를 통해 비잔티움 문화를 흡수했다.
12세기에는 10~15개의 공국이 나타나면서 키예프 루스 공국은 공국들의 연합체가 되었고, 블라디미로 수즈달 공국에서 갈라진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었다. 경제적으로 교역로가 쇠퇴하였고 상품경제에서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경제로 변화하며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몽고 시대로 접어드는데, 이때 모스크바는 몽골에 순종하여 유복해지는 발판을 마련한다. 우크라이나의 역사가들은 할리치나-볼린 공국을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로 본다.
제3장은 리투아니아-폴란드의 시대를 다룬다. 키예프 루스 공국은 단일 루스 민족이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세 민족으로 분화하고 모스크바대공국, 폴란드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분할된다. 언어도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가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코사크가 형성된 시기도 이때다. 이 시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라는 어원을 러시아에서는 '변경지대'라고 하였으나 우크라이나에서는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한다고 본다. 16세기가 되자 특정한 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코사크 지대를 가리키게 되었다. 코사크에게 우크라이나는 조국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시적인 단어가 되었다. 19세기가 되어 러시아제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지배하자 우크라이나 땅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917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제4장에서는 코사크의 영광과 좌절을 다룬다. 코사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스텝 초원에 거주하던 자치적인 무장집단을 말한다. 코사크는 이후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한다. 우크라이나의 최고 영웅이자 우크라이나의 배신자라고도 평가되는 흐멜니츠키가 등장한다. 흐멜니츠키와 코사크군은 폴란드를 분쇄하기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완전한 독립보다 코사크의 권리 향상 정도에 머물렀다. 이후 흐멜니츠키는 자력으로 폴란드에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외국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때 모스크바와 보호협정을 맞게 된다. 이때의 조약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병합되는 과정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국의 안전을 위해 외국의 협조 또는 외국의 힘을 빌어올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좋지 않았다. 자주국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제5장에서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우크라이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80%는 러시아제국, 20%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발흥해서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는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되어 러시아 제국 최대의 공업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제6장에서는 중앙 라다가 등장한다.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고 소련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는 과정애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의 발트, 북유럽 국가들이 독립하고 오스크리아-헝가리 제국 하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달성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큰 에너지를 독립운동에 투여했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희생을 치렀다. (p.189)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왜 독립을 하지 못했을까?
먼저 국내적 요인으로 차르 정부 하에서 민족주의가 억압되어 있었다. 많은 인텔리가 사회개혁과 민족독립을 두고 고민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치와 독립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정치가들이 정부 수립을 하게 되었고, 혁명의 주도권을 쥔 도시 주민 중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적었고 독립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낮은 교육 수준 탓에 독립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국외적 요인으로는 폴란드의 압도적인 힘, 러시아의 볼셰비키의 인적 물적 차이, 협상국과 미국이 정부의 좌파적 성향을 탐탁치 않게 여긴 점 등을 들 수 있다.
힘들게 독립을 했지만, 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들어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이 책은 평가하고 있다.넓은 면적, 유럽 최대 규모의 철광석 산지, 세계 흑토의 30%에 이르는 농업, 과거 소련의 최대 공업지역이면서 수준 높은 과학자와 기술자, 서유럽세계와 러시아, 아시아를 잇는 통로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등은 그런 잠재력을 짐작케한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잠재력 때문에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유지는 세계 ㅍㅇ화와 안정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최근 20년 간의 정보와 변화를 함께 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책을 마지막으로 덮는 순간까지도 이 점은 많이 아쉽다. 우크라이나의 최근 상황을 다룬 내용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덧붙임: 키예프, 키이우 표기 방식에 대해선 일단 책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