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 르네상스 천재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그들의 삶
로스 킹 지음, 신영화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번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읽은 후 연이어 로스킹이 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한 김지윤 박사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브루넬레스키의 돔>이지만,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이다."(p.5)라고 밝히고 있다. 나는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흡입력이 있었다면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한템포 쉬어가며 읽어야 했던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이 좀더 시대상과 동시대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치,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이야기가 얽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미켈란젤로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연이어 이 책을 읽게 되어 나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에는 70여 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책의 가운데 쯤에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장화의 일부 일부가 책의 내용과 함께 실려 있으면 더 좋을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책장을 들추어가며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점은 아쉬운 점이다.

미켈란젤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미를 보여주는 「피에타」와 남자의 누드로 거인의 힘을 보여 준 「다비드」가 아닐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감명받은 교황 율리우스는 영묘 작업을 맡기게 된다. 그런데 성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축 공사를 앞두고 돌연 영묘 작업을 중단시켜 버린다. 영묘 작업을 위해 대리석을 주문하고 작업 준비를 하던 미켈란젤로로서는 화물운송비를 지불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교황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들어 회피한다. 지금까지 문전박대를 당한 적 없던 미켈란젤로로서는 공방 물건을 전부 팔아버리고 로마를 탈출한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폭군으로 통했다. 그런 교황의 거듭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답장을 쓴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영묘 제작을 단념한 것이 브라만테의 계략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자신의 야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명성에 치명상을 입히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다.(p.23) 미켈란젤로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의 프레스코를 맡긴것이다.

콘디비와 바사리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미켈란젤로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특정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했다. 그래서 브라만테 같은 질투심에 찬 경쟁자들이 온갖 책동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이 조각가가 미술의 최고봉을 정복한 것처럼 기술했다. (p.29)

브라만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절친한 친구이다. 로마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일신하기 위해 율리우스 2세는 브라만테에게 큰 건물과 기념물을 많이 세우라고 하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지반 침하로 천장의 균열이 생겼는데, 교황과 브라만테의 대화를 로셀리라는 사람이 미켈란젤로에게 전달한다. 교황이 시스테나 예배당의 천장 프레스코를 맡기려고 하는데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는 이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 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다빈치의 그림 대결 이후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은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프레스코를 미켈란젤로에게 맡기기로 한것이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가 미술 경험이 없고, 프레스토 기술에 무지하며, 고난도의 기술인 단축법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로사리의 편지를 읽고 브라만테가 자신을 중상모략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는 부친, 형제들, 고모와 삼촌 등 대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형제들은 4명이었다. 가족들은 미켈란젤로의 인생에서 도움이 되기보다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들을 책임지고 있는 미켈란젤로였다. 미켈란젤로는 파비아의 추기경 프란체스코 알리도시의 도움을 받아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로마로 갈 때 미켈란젤로는 신변안전보장 각서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다치거나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교황은 천장 프레스코 도안의 기본 지침을 자신이 직접 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정한 대강의 도안에 맞추어 세부 도안을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비망록에 알리도시 추기경이 정한 도건과 합의대로 작업했다는 구절이 있어서 추기경도 도안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미술가들에게서 미술시장이나 의뢰자의 간섭에 굴하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을 빚어내는 일은 한 세기나 지나야 가능해졌다. 주문자의 요구에 그대로 따른 작품을 만들었다.

브루넬레스키가 로렌초 기베르티와 끊임없이 대결을 벌인 것처럼 미켈란젤로도 그랬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다빈치와의 경쟁은 익히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다빈치는 미켈란젤로를 경계했으나 라파엘로에게는 자신의 다수 작품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다. 절친인 브라만테와 이 젊은 미술가가 친했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의 프레스코는 대부분 라파엘로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여유롭고 사교적인 라파엘로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프레스코를 한 반면 고독하고 과묵한 천재인 미켈란젤로는 오히려 말 많은 조수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수정하면서 펜시에로소 또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고독한 철학자를 그렸다. 라파엘로가 아테네학당에서 지식 전달 집단으로 표현한 사제 집단에서 바끝으로 밀려난 소수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그린 것이다. 이 인물화의 코가 펑퍼짐하게 그려져서 많은 이들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델이 미켈란젤로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라파엘로가 이 철학자에 미켈란젤로의 외모적 특징을 부여한 것은 만물유전의 세계관 때문이 아니라 심술궂은 성미와 경멸감 등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1511년 당시의 로마인들에게 라파엘로의 작품은 아름답고, 미켈란젤로의 것은 숭고했다.(p.336)

이 책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의 부분 부분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온다. 그림을 보면서 미켈란젤로가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을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그렸을지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시간의 때가 묻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를 복원한 것이 1989년 12월이다. 복원을 통해 제작 당시의 색감이나 후대에 덧칠되어 사라지거나 수정된 그림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프레스코 과정에서 미켈란젤로가 조수진을 이끈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조수들과 함께 일하는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을 통해 복원된 그림이 후대 사람들의 상상으로 덧붙여진 신화(미켈란젤로가 홀로 누워서 천장 그림을 그리는 장면 등)를 수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실물 천장화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장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