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레스키의 돔 -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 이야기
로스 킹 지음, 김지윤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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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 딸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한 달 정도 유럽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적금도 들고 짧은 시간 동안 알찬 경험을 하기 위해 자료 조사도 꽤 했었다.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여름 방학 혹은 이번 겨울 방학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하였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또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가 되겠지.



얼마 전에 이 책을 소개받았다. 낯익은 소재와 내용이다 싶었는데 재출간된 책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잘 몰라도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들 속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이름을 찾아 기억하기에는 좀 낯설기는 하다.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기도 하고 '건축가'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 두오모 성당 사업단이 설계안을 정하는 당시의 상황이 나온다. 당시에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울 때엔 건축가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설계도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곤 했는데, 건축주나 심사단은 모형을 보고 완성된 건물을 상상할 수 있었다. 중세의 건축가들을 가장 괴롭힌 것이 건축물의 안정성 문제였다. 완성되자마자 폭삭 주저앉거나, 공사 도중에 무너져 내린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사와 볼로냐의 종탑은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버렸다. 사실, 현대의 건축에서도 이런 문제는 일어난다. 얼마전 외벽이 무너져내려 인명피해를 일으킨 아파트 공사며,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 보강공사를 한 아파트가 지척에 있다. 과학 기술과 건축 기술이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안전'에 관한 걱정이 존재한다.



이 시기 피렌체에서는 시민 투표를 거쳐 설계안을 결정했다. 시민투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기도 했지만, 만일의 경우 사업단이 전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였다. 그렇게해서 결정된 네리의 돔 모형은 하나의 돔이 또 다른 돔을 감싸는 이중 구조였으며, 네개의 원통형 궁륭이 맞물려서 팔각형을 이루는 복잡한 디자인이었다. 이것에 피렌체 사람들은 감탄하였고, 모형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당을 완성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산타마리아 대성당 돔 설계에 대한 공모가 발표되었을 때 십여 개나 되는 모형이 접수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감하게 모형을 제작한 이는 금세공사이자 시계공이었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공모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1400년 여름 흑사병으로 만 이천명에 달하는 피렌테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피렌체의 모든 아기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을 새로 달아서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의 라이벌전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로렌초는 되도록 많은 이에게 조언을 수렴하면서 문제에 접근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심사위원에 소속된 이들이 많았다. 브루넬레스키는 홀로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발명품이나 건축 모형을 만들 때도 누군가가 자기 설계도를 훔치거나 엉망으로 만들까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의 장식판은 바르젤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동문 공모에서 손을 뗀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났다. 도나텔로와 함께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발굴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도나텔로조차도 그가 왜 발굴작업을 하는 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안토니오 마네티는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의 유적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크기와 비율을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청동문 공모에서는 손을 뗐지만, 대성당의 돔 설계는 그의 건축학적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로마 유적 중 브루넬레스키가 특히 주의 깊게 본 것은 판테온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1418년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한 실험으로 꽤 유명인사가 된다. 판테온이나 콜로세움 같은 웅장한 건물은 원근법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유적을 조사하면서 측량 기술과 관련이 있는 원근법 소묘를 통해 당시의 첨단 측량 기술을 회화에 적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원근법을 활용할 그림의 대상으로 산 조반디 대성당을 선택한다.




그리고 1418년 성당 건축 사업단은 모든 응모작에게 '호의적이고 공정한 심사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안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적대감이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훨씬 혁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모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중심틀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첨단 기술과 창의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는 현대에도 남과 다른 방법, 남과 다른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일이 없지않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을뿐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 브루넬레스키에게 호감을 표시할 심사위원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접근법, 창의적인 발상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다르게 하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차단하고자 방해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우리는 오래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라이벌'에 대해서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동계올림픽 중계를 함께 보고 있던 터라 더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숙명의 라이벌로 대결을 벌였던 스포츠 선수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는 건축장으로 임명되어 또 다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이 책은 브루넬레스키의 일대기와 돔 건축에 얽힌 일화들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 그리고 성당 건축을 비롯하여 각종 공사에 참여하였던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인부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설계도를 그리고 공사를 지휘하는 건축장의 능력만으로 그 큰 공사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돔을 쌓아올렸던 이들이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브루넬레스키는 공사에 필요한 기계들도 제작을 한다. 이 기계들 역시 공모를 통해 제작되었는데, 이 외에도 팔각형 돔의 벽 안에 둥그런 골격을 만들어넣는 공학 기술을 이용하기도 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동그라미 위에 또 다른 동그라미라는 말로 천당을 묘사했듯이 브루넬레스키는 천당을 기하학적 관점에서 정확히 구현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브루넬레스키의 아홉개의 동그라미는 단테의 지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라이벌이었던 로렌초 기베르티, 그리고 당시의 공학 기술과 예술을 대하는 피렌체인들의 태도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건축적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교양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이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돔을 직접 눈으로 올려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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