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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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해 둔 지 꽤 되었는데, 정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서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질문을 받은 후 확인도 할 겸 꺼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쭈욱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를 보면 이 책의 저자인 곽한영님이 '책을 사 모으면서 정한 자신만의 원칙'을 소개한다.

1. 책을 수집하는 목적이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에 있다.

2. 값비싼 초판본에 연연하지 않고 초판본의 모습을 간직한 중쇄본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 발간되었더라도 본래의 삽화와 판형을 유지하고 있는 책을 구입한다.

3. 본인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


초판본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고가에 팔거나 경제적 가치를 노린(?) 사람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위의 원칙에 따른다면 오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책에는 열 권 정도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많은 분이 읽어보았을만한, 굳이 그 작품을 다시 읽지 않더라도 어릴 적 기업을 떠올리며 '아, 그래.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하고 무릎을 치며 즐기실 만한 작품들"(p.11)을 우선 골랐다고 한다. 이 기준에 어긋나는 책은 『닐스의 모험』과 『하늘을 나는 교실』인데, 나는 이 책들도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책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열 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 『보물섬』, 『빨간 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시리즈』, 『닐스의 모험』


먼저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가족이야기지만 정작 가족 중 한 명인 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설정되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작은 아씨들』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작은 아씨들』은 미국적 가족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는 "출판계 입장에서 보자면 아동 서적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가능한 블루오션이 형성"(p.28)된 시기이다. 여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아동 서적의 붐이 일어났다. 책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부모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아동서적에서는 교육적 목적을 강조하게 되었고,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건강한 소년의 모습을 강조하는 모험 소설과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다보면 결국 복을 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시리즈류가 많이 발간되었다.


어린 시절 올컷의 집에는 에머슨, 소로, 호손과 같은 당대의 유명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이는 올컷이 그들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고 전업 작가를 꿈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클라이맥스나 분명한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도 아니고, 묘사도 좀 진부한 측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1868년의 시대적 상황이 한몫을 했다. 미국인들은 남북전쟁이라는 고난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미국, 평범한 미국인들의 작은 영웅담, 소박하지만 안온한 삶의 근거인 가족의 정(p.41) 등을 담은 이야기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0권의 책들은, 내가 이야기와 줄거리로서 인식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된다. 내가 이 책들을 읽은 것은 초등학생 때이고(나는, 국민학생이었고,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다) 그 이후로 저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빨간 머리 앤』은 수시로 읽는 작품이기에 어릴 적 감상과는 다른 감상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의 감상에서 바뀐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해당 소설이 발간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작가의 가정사와 개인적인 상태, 그리고 의식 등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됨으로써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발간되던 당시에는 책이 필수적인 학습을 위한 용도이기도 했지만, 부유한 집 안을 장식하는 사치품이기도 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올리비아 랭던과 결혼한 후 작가로서의 성공과 아내가 가지고 온 엄청난 재산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컸던 마크 트웨인은 더 많은 책을 판매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톰 소여의 모험』 초판본은 페이지에 여백을 넉넉히 두고 목차 앞쪽에는 백지를 16장이나 끼워 넣고, 최대한 있어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페이지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은 삽화를 대폭 넣는 것(p.93)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을 '돈 되는 아동 소설'을 쓰기 위해 썼다. 거기에 유머 작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던 마크 트웨인은 온갖 지저분한 농담과 비도덕적인 행동, 차별적인 사고를 그대로 이 소설에 담았다. 저속 통속 소설로 취급받던 이 책이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 책의 저속성을 고발하는 글들이 속속 게재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자 도덕률로 문학 작품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는 반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 소설은 픽션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실제 삶을 그대로 옮긴 회고록에 가깝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다르게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지금은 마크 크웨인을 값싼 유머 작가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철없는 유년 시절의 행동은 기성 세대에게는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된다. 어떤 작품이 발간된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자리잡기도 하지만, 고난과 수난을 겪은 후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좋은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마크 트웨인의 책을 출간하던 출판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조카 사위찰스 웹스터가 자살을 하고 그의 딸이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고아처럼 자란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한다. 그녀는 진 웹스터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소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말 이런 일도 있었어? 아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던 거야? 내가 아는 작가와 이미지가 좀 다르네.' 등 내 생각을 수정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 소설들을 읽었던 시기에는 아마도 이런 내용을 알려줬다고 한들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소설의 사회적 배경, 경제적 환경, 정치적 의도, 그리고 작가들이 만나고 영향을 받았던 유명인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니 그에 맞게 다시 이해되고 생각이 재편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내가 좋아했던 책은 언제든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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