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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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연상 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는 어린 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이나 캠프처럼 내가 가기 싫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기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데려디준다. 그것도 생각의 속도로.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10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차는 좋아한다. 기차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기차를 좋아한다. 지방에 살고 있으면, 수도권 지역에 편중된 문화 시설과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적지 않은 교통비를 투자해야 한다. 버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기차는 돈이 많이 든다. (요즘은 비행기가 더 싸긴 하다) 대신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기차를 선택한다. 주로 책을 읽거나 업무를 하게 되는데, 아주 편안한 프리미엄 우등고속버스라고 해도 기차만 못하다.

이 책의 저자는 기차와 철학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한때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지금은 약간 낡아버린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기차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면 다를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기차로도 충분히 1일 생활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나는 저자의 기차여행에 함께 탑승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은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동행이 있다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철학이라 하면 아무래도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철학을 배울 때 '철학'을 배우지 않고 '철학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를 키울 수 없는 철학 수업을 하니 철학이 재미있을 수 없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p.12).

저자가 선택한 철학자는 총 14명이다. 새벽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 14명의 철학자와 함께 일어나 궁금해하고, 걷고, 보고, 듣는다. 때로는 즐기기도 하고 관심을 기울여본다. 싸우기도 하고 베풀기도하며 감사하거나 후회한다. 역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늙어가거나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를만날 수 있다. 이들은 익히 들어봤고 잘 아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저자는 그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거나, 의심한다. 그래서 이 기차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일 거다.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몸을 실어 본다.

마르쿠스는 철학자이자 왕인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저자는 마르쿠스처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철학을 공부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마르쿠스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아 아니라 망각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고 한다. 《명상록》을 통해 마르쿠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한다. 좋은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라.

제이컵 니들먼의 《철학의 마음》 에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질문을 경험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든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과 '왜'에 관한 질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질문은 '어떻게'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동의어였다. 삶을 성찰하거나 자기자신을 명확하게 들여다 보려면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장자크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그에게 '걷기'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는 루소의 철학을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라고 정리한다.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루소처럼 많은 철학자들은 걷기를 즐겼다고 한다. 걷기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걷는 것을 즐겼고,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토머스 홉스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걷기를 즐겼다. 칸트는 엄격한 산책 일정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느린 이동 수단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기는 등 위선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월든》은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즉 소로는 사회와 격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모든 철학은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백과사전이 인터넷이었다. 그는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있는 일인데 자기 생각을 하지 않고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비판했다. (요즘은 그 책도 안 읽어서 문제~). 저자는 여기서 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의 우리 모습이 나온다고 말한다.

1부를 통해 5명의 철학자를 만났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철학자지만,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그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위선적이라는 소로나, 마조히스트 루소를 만나기도 했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가 그나마 교과서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철학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을 떠올리게 한다. 관심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으나 관심은 강제할 수 없다. 집중은 수축하지만 관심은 확장한다. 집중은 사람을 피로하게 하지만 관심은 피로를 회복시켜 준다. 집중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고 관심은 생각을 유보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진정한 관심이란 기다림과 같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세이 쇼나곤은 낯설면서도 더 알고 싶은 철학자이다. 책에서 소개한 많은 철학자들 중에서 그의 생애와 철학을 상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철학자들과의 여행을 마친다. 철학이란 것이 늘 어렵게만 다가왓는데 조금은 편안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책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평생을 훑어내리면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철학을 교양으로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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