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떠올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랩걸보다 더 공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천문학자로서의 고민 속에 나와 혹은 우리와 공통되는 고민들이 살짝살짝 보인다. 거기에 연구만 하느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분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답답한 학자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가 보인다. 글 곳곳에 숨어 있는 문학과 영화와 음악과 대중문화가 좀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IAU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P.19~20)

나는 언제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믿는다. 나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마다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순간 "저요!"하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그녀가 두번째 '저요!'를 외쳤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쳐왔다. 내가 그녀처럼 대단한 과학자나 알아주는 유명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온 기회를 잡을 때가 있다. 나는 저자를 잘 모르지만, 어떤 성격일지 상상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참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은 잘 읽힌다. 과학적 지식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자로서의 삶과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삶을 잘 그려놓았다. 특히 와닿았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많은 기록에 남아 있는 천문학적 관찰 기록들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이소연 우주인의 이야기, 그리고 학생들의 글쓰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보고 거기에 새로운 부분을 더해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따라 해보았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미 갖추고 있는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고 판단 받을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뛰어날지라도 형식만은 판에 박혀 있어야 한다. 이 연구를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마침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는 적지 않는다. 시적 허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학문적 글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적 글쓰기는 유려한 글 솜씨를 요구하지 않는다. 연구 내용이 별것 아니더라도, 글이 서툴더라도, 남의 것을 베껴 열 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한두 쪽이라도 자신이 행하고 생각한 내용을 형식에 맞게 쓰는 것이 더 지적인 활동이다. 그것이 대학의 모든 강의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혹은 배워야 할, 대학생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다. (P.58-60)

좀 길게 인용을 하였다. 비단 이 내용은 대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글쓰기 또한 이와 같다. 대내외 문서를 작성하면 그 문서는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애써 만들어 놓은 문서가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인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부터 글쓰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한다. 기안서나 제안서를 쓰고 계약서를 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 막막해한다. 이과생들의 글쓰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고 문과생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할수는 없다. 막연하게 길어진 문장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듯) 시적허용이 필요없는 문장을 써야 함에도 감성적인 단어를 마구 섞어놓기도 한다. 보고서라고 하기에 애매한 글들, 무엇을 기안하는지 제안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에서 벗어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 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그렇게 퇴근한 날은 읽고 있던 논문이나 책이 가방 가득 들어 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 노릇도 절반쯤만 할 수 있는 날이다. (P.77)

이 글을 읽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읽다 만 책과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퇴근하느라 핸드백이 아니라 무거운 백팩이어야 했고, 예쁜 구두보다 투박한 운동화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아이를 재우고 마저 하려던 바램과는 달리 잠들어버렸듯이,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위킹맘은 크든 작든 비슷한 일들을 겪고 사는 듯하다. 우주인 이소연에 관한 평가는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이 남자였더라도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P.107) 엄마의 의무가 아니라.

저자의 글에는 우리나라의 우주과학의 미래를 위한 애정이 마구 묻어난다. 우주 탐사에 관한 정책은 특별한 정치색을 띠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계에서 과학자 집단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나 국민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해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과학이든 기술이든간에 자기네가 하지 않으면 다 혈세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해 준것은 없으면서 공은 자기들에게로 돌리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억지 선동)가 자주 보이던데....나의 기우이길...

우주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수라고 한다. 저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문단도,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도, 그것을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공무원들, 그리고 우주탐사를 지지하고 애정어린 눈길로 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우주탐사가 늦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는 자신있게 발걸음을 더 떼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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