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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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제인 오스틴 전집을 구입한 지는 조금 되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함께 읽는 독서동아리가 없었다면 아직도 책장 한켠에 놓여있을 책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p.11)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그 독신 남성은 부유하고 멋있고 모든 걸 갖추었겠지? 그와 관계가 있을 그녀는 아마도 제법 똑똑하고 괜찮은 미모를 지녔을 것이며, 대신 집안 형편은 좀 딸릴 수 있겠네. 나의 이 생각은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일단 맞아떨어지는 설정이었다. 어린 시절 하이틴 로맨스와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이래(그때가 초등 5학년 경부터 중등 3학년 즈음까지였다) 이런 류의 로맨스 소설은 가능한 안 읽을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아, 그래도 읽다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사후 2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읽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책이니까. 그래서 계속 읽어가기 시작했다. 베넷 부인과 베넷 씨가 네더필드 파크에 이사 오는 빙리 씨를 두고 자신의 딸들이 결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자는 베넷 씨를 예리한 지성, 냉소적인 유머, 내향적인 기질, 충동적인 변덕이 기묘하게 섞여 있어서 그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에 반해 베넷 부인은 비해력도 떨어지고, 견문도 좁고, 오로지 딸들을 출가시키는 일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독특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책 속 배경이 되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은 지금 보면 고루하고 갑갑한 것임에도 술술 읽히는 것은 그런 인물들이 자기 역할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베넷 씨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다. 제인은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이고, 리지(엘리자베스)는 인물은 제인보다 못하고 싹싹하지도 않지만 예리한 면이 있고 똑똑한 딸이다. 메리, 리디아, 키티는 베넷 씨 생각에 멍청한 아이들일 뿐이다. 물론 부모로써 딸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말이다. 네더필드 파크에 온 빙리 씨는 무도회를 열었고, 거기에서 빙리 씨의 친구인 다아시 씨가 주목을 받았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품위 있는 태도 때문이었지만 곧 고약한 태도로 인해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고 만다.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 씨와 빙리 씨의 대화를 듣다가 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

무도회와 정찬 초대 등을 통해 다양한 이웃 간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도 네더필드의 여자들(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과 교제를 한다. 빙리 양은 제인의 상냥한 태도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였다. 제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누군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바꾸는 일을 어려워할 만큼 마음도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빙리 양을 비롯한 그쪽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거만하게 구는 것이 못마땅해하였다. 그나마 빙리 씨가 제인을 향해 보여주는 친절과 호감 때문에 그들도 예의상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샬럿(엘리자베스의 친구)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 생활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렸어. 서로의 기질을 속속들이 안다거나 원래부터 아주 비슷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냐. 기질은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져서 결국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 인생을 함께 보낼 사람이라면 결점은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p.38)

배넷 씨의 다섯 딸은 물론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 상대를 물색하고 청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혼은 신분 상승 혹은 경제적 여건이 달라질 수 있는 해법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샬럿의 결혼관은 마땅해보인다.

무도회 이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에 대해 오해의 폭을 계속 넓혀가는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아시 씨가 계속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엘리자베스는 왜 모를까? ^^;

나도 '첫인상'이 꽤 오래 가는 편이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사람은 늘 일정 정도 벽을 쳐놓게 된다. 어떤 커다란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첫인상이 바뀌기에는 어렵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역시 그랬을 것 같다. 제인이나 엘리자베스에게 좀더 교양 있고 우아한 엄마와 동생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평판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한 시대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남자의 평판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콜린스 씨나 위컴 씨 같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나라면, 그런 사람의 '과거'라면 그를 좋은 사람으로 절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산을 상속받거나, 빚을 탕감하게 되고 '결혼'을 함으로써 모든 게 용서(?)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때문에 도망간 여자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사랑때문인지 돈때문인지 이유도 불분명하게 도망간 남자는 그다지 평판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엘리자베스나 제인이 엄마와 동생들 때문에 별볼 것 없는 가문의 딸로, 곁에 있는 이들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정당하게 변명이 되는 상대로 보여지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 콜린스 씨, 다아시 씨 앞에서도, 그리고 숙부인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캐릭터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비록 시대나 사회적 상황이 지금과는 다르다고 하여도 엘리자베스 같은 당당한 여성상이 요구되는 지금에도 많은 이들이 재미있게 읽는구나 싶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가문이 지체없는 가문이라 하여도 사랑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마도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흔들었지 않을까? 오해와 착각으로 인해 꼬이고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그들의 솔직함, 그들의 진실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제인 오스틴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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