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 - 한계를 거부하는 다재다능함의 힘
와카스 아메드 지음, 이주만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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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매스'는 다능하고 박식한 사람이다. 서로 연관 없어보이는 분야에서 세 가지 이상의 일을 아주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말한다. 단지 재능이 많은 사람을 폴리매스라고 하지는않는다. '분야를 뛰어넘는 출중함'이 있어야 한다. '끝없는 호기심과 뛰어난 지능, 놀라운 창의성이 바탕이 되어야'(p.29) 폴리매스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현대가 '한 우물'만 파는 '전문가'를 바라는 시대지만, 이러한 전문화 시스템은 성장과 발전을 방해하는 시스템이며, 한물간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과도한 전문화'를 비판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폴리매스야말로 진정한 전문가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인 와카스 아메드는 그 자신이 폴리매스이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메드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서 살았고, 경제학 학위, 국제관계학 학위를 취득하고 신경과학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또한 그는 칼릴리 컬렉션 재단의 예술 감독이며 그 전에는 외교 분야 기자이자 발행인이었다. 〈퍼스트〉 잡지사의 해외 특파원으로 전 세계의 정부 관료, 기업 경영진, 사회참여 지식인들을 독점 인터뷰했으며, 영연방 정부회의의 공식보고서 에디터를 역임하고, 유네스코, 영연방 정부회의, 바티칸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홀리 메카〉의 에디터였다. 신경과학 연구자로서 만성통증 치료에 관한 다학문적 접근법을 연구하며, 인지적 유연성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다빈치 네트워크’의 창립자이며 매년 폴리매스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나는 '한우물'을 파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좀 진득하게 하나라도 이뤄야 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폴리매스'란 '한 우물'도 제대로 못 파면서 여기저기 삽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물마다 지하수 펑펑 터뜨리고 다른 우물도 파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의견에도 동의하는 바이다.

2장과 3장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폴리매스라고 하는지, 그리고 폴리매스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는 '여기저기 쓸모 있는 폴리매스'가 되는 것을 능사로 여겨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기술을 폭넓게 습득했다. 다방면에 능통한 이들은 초기 문명사회를 일으키고 고대의 '선진문화'를 창조하는 데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고대 예술 작품과 과학 기술이 탄생했다(p.35).

폴리매스들에게는 특별한 신분이 주어졌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궁정인이라는 신분 덕택에 기득권층 사이에서도 자신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종교단체나 밀교, 대학 등도 폴리매스를 후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역사에 기록된 폴리매스들은 상류층이거나 남성 중심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민이나 여성들 사이에서 폴리매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넘나들며 능숙하게 처리하며, 남성보다 멀티태스킹에 더 능숙하고 적응력이 좋다. "여성들은 [폴리매스에게 필요한] 사고 전환 능력을 실생활에서 이미 발휘하고 있었지만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p.48) 여성이나 평민 외에도 서구 사회가 아닌 지역의 폴리매스들 역시 역사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저자는 기존의 역사서가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진정성 있고 균형 있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전문가 신화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한 사람에게 하나의 고정된 역할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화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제약한다. 우리의 정신, 생활방식, 사고방식, 문화, 사회가 전문화 시스템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인간은 당연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하는 줄로 알고 있다(p.59). 4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전문화 숭배에 이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전문화는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다양한 작업을 분업함으로써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가 기능별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상호의존성은 증가하였고 개인은 결속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전문화의 경향이 자연스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필요성에 의해 전문화된 것과 별개로 특정 사회 체제와 이념 아래에서 전문화시스템을 강조하는 사회의 환경과 문화가 조성되었다고 말한다.

1800년대에는 지식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19세기에는 대학과 아마추어동호회, 전문잡지 등을 통해 전문화가 가속화되었다. 19세기 후반 현대적 기업의 등장은 노동뿐만 아니라 생활방식과 폴리매스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에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전으로 제조공정이 전문화되고, 기업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양산하는 교육을 통해 전문화 시스템은 촉진되었다. '교과과정이란 애초에 노동자들이 사용설명서 정도 읽을 줄 알고 생산라인에서 특정업무에 숙달할 수 있도록 가르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p.157). 20세기 들어 학교, 정부, 기업에서 분업과 분과를 채택해 경계는 엄격해지고 초전문화시대가 도래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전문화로 인해 사람들은 그들만의 '특정 분야'에 갇혀지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선형적이고 순응적이고, 표준화된' 사람을 요구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교육제도가 '다양하고, 유기적이고, 적응력이 좋은' 사람을 요구하는 현대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알고 싶고 재미난 교양지식은 접하지 못한 채 왜 배우는지도 모르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부만 하다 아주 소수의 어른만이 중요하고 흥미로운 새로운 지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장노동자를 길러내는 교육에서 출발한 현대의 교육제도는 전문화시스템을 가속화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과 재능을 발휘하며 크기를 바란다. 많이 개선되고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대부분이다. 지능이 아주 뛰어난 영재들은 더 어려서부터 하나의 특정 분야에 집중하도록 격려받는다. 그로 인해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억압받고 전문 분야에 전념하도록 권장받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업무 외에도 다양한 취미생활이나 활동, 즉 여가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소확행'이 유행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이었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은 충족되었지만 여가를 즐기는 시간은 줄고 일하는 시간은 더 늘었다. 과도한 경쟁 문화는 전문가를 숭배하게 만든다. 그러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현대의 노동시장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잉여인력으로 분류되거나 승진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앞으로는 전문직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

나는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6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콧페이지는 그의 책에서 비슷한 생각을 지닌 전문가 집단보다 다양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더 뛰어난 성과를 낸다고 하였다. 다양성이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집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개인의 생각과 경험이 다양해지면 사회 전체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돌아간다.

전문화가 경쟁 구도에서 강화되었다면, 폴리매스는 조화로운 세계와 다양한 문화 속에서 강화된다. 사고를 확장하고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며, 개성을 키우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되게 하는 것이 폴리매스 기질을 발현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이러한 교육이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자기주도학습'이 바로 유효한 실행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나 부모의 강압에 의한 배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호기심과 자신의 욕구에 의해 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폴리매스에게 노동은 즐거운 일, 프로젝트, 기회, 모험, 주도적 과제라고 한다. 즉 그들에게 노동은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과거에 비해 노동을 해야 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나에게 꼭 맞는 천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다. 물론,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여러 가지를 그것도 모두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폴리매스가 되라는 말만큼 가혹한 말이 또 있을까?

나는 이 글의 서두에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기업에서 폴리매스와 같은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 부문에서 다재다능함을 촉진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직무로 기업관리자 혹은 최고경영자, 연쇄창업가, 벤처투자자 또는 엔젤투자자, 비즈니스 컨설턴트, 이사회 구성원을 들고 있다. 모든 직업이 다재다능함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21세기의 환경은 다차원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전략의 깊이보다 창의성이 더 중요한 시대이다. 따라서 초전문화가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경험으로 넓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이 읽어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고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야 하는 기업 경영진에게도 생각할 꺼리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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