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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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 내가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는 내 아이에게 권하기 위해 미리 읽을 때와, 청소년 독서수업 준비를 위해 읽을 때이다. 그래서 아직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읽히기 딱 좋은 책들을 읽어왔다. 청소년 소설과 성인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책도 많은데, 청소년교양도서로 선정된 이 책도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 이상의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적합해 보인다.



방학이 시작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학생들이 모두 떠난 기숙사에 홀로 남은 '마린'은 '메이블'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기다린다는 말은 맞지 않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마린'은 엘리베이터에 갇힐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메이블은, 엘리베이터에 갇힌 마린과 만나지 못하고 역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채 떠나버릴 것이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나는 마린의 불안감을 느낀다. 방학이 되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마린, 친구가 찾아올 자신의 방에 그동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갇혀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마린의 일상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는 "편지를 두 통 쓰면 두 통을 받는 법"이라며 버리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 사건이 일어났다. 마린은 그날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슬픔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책에서 슬픔을 찾았다. 현실보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 진실은 틀에 갇히지 않았고 꾸밈이 없었다. 진실에는 시적인 표현도 없고, 노란 나비들도 없고, 엄청난 홍수도 없었다. 물에 잠긴 도시도 없고 똑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남자들도 없었다. 진실은 그 안에서 익사하고도 남을 정도로 광활했다."(p.111~112)



"우리는 너무도 순진해서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거라 믿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의 조각들을 맞추기만 하면 그럴듯한 하나의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우리 모습 같은, 우리의 거실 같은, 그리고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 같은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대신."(p.157)



"나는 나의 외로움이 두려웠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속였던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설득했던가. 난 슬프지 않다고, 난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두려웠고 할아버지가 낯선 사람이었다는 게 두려웠다. 내가 할아버지를 너무도 미워한다는 게 두려웠다.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게. 그 상자들 안에 있는 것들과 언젠가 내가 알게 될 것글, 그리고 그 상자들을 잊고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내가 잃을 수도 있는 기회가. 서로의 방문을 열어보지 않고 살았던 우리의 방식이 두려웠다."(p.251)



"할아버지가 나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p.253)



마린은 아빠는 알지 못했고, 엄마는 세살 때 죽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먼저 보냈고, 딸도 먼저 보낸 아픔을 갖고 사는 인물이다. 버디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고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온다. 어느날 해변에서 서핑을 하는 할아버지에 관해 들은 날, 그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마린은 할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린은 버디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가 나를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던 마린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 마린은 그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밀어닥친 혼란에 그렇게 무작정 도망쳐버렸다. 내 주변에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마린에게는 900개의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는 친구를 놓아버리지 않은 메이블이 있었다. 마린은 메이블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마린이 떠난 후 메이블에게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마린의 상황도, 메이블의 현재도 많이 바뀌어버린 지금, 그들은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이란 것이 반드시 하나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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